진짜 잡기장

가장 실용적인 경제학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술이부작 2015. 2. 11. 00:12

경제학 입문서로 이보다 나은 책이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쉽다. 저자의 말대로 고등학생 수준이면 무난하게 읽을 수 있다. 조금만 시간과 의지를 투자하면 아마 하루 만에 독파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러면서도 포괄적이다. 경제학의 어떤 분과를 다루는가 따져보면 경제사, 경제학사, 경제성장론, 소득분배론, 국제무역론 등이 포함된다 볼 수 있고, 저자의 전작들도 대략 포함돼서 <사다리 걷어차기>, <국가의 역할>, <쾌도난마 한국경제> 등에서 다룬 내용도 핵심은 이 책 안에 다 녹아있다. 물론 논문이 아니기 때문에 훨씬 술술 읽힌다.

 

하지만 이 책과 다른 경제학 입문서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관점일 거다. 물론 장하준 교수는 자기 입장만 옳다고 주장하진 않으며, 신고전파부터 마르크스주의까지 경제학의 다양한 시각을 모두 설명한다. 또, 복잡한 현실을 모두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없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어떤 학파가 가장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는지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학의 주류를 차지한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계와 모순을 여러 차례 지적하는 것 또한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신고전파 경제학에 우호적인 태도를 갖게 되기는 쉽지 않을 거다. 때문에 주류 경제학계에서는 아마도 이 책이 '편향됐다'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이미 우라나라에서도 학계와 언론, 정치권을 장악한 논리는 신고전파 쪽에 가깝다는 것. 경제학 상식처럼 여겨지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확실한 진실이 아니라고 알려주는 이 책은 그래서 오히려 균형잡힌 시각을 갖기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덕분에 '알프레드 마샬=하이예크=우파=신고전파=신자유주의자'라고 생각했던 도식적인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하이예크는 오스트리아 학파로 분류되고, 이들은 자유방임 시장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신고전파와 비슷하지만 철학적 전제는 전혀 다르다. 또, 스티글리츠나 폴 크루그먼 같은 '좌파' 학자들도 신고전파에 속한다고 하니, 역시 세상은 단순하게 이해할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