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시간제 일자리
지난 3월 Deutsch Welle에 실린 "시간제 일자리 - 현대판 노예?(링크)"를 번역한 글입니다. 군데군데 의역한 부분이 있습니다. 오류 지적 환영합니다.
시간제 일자리가 독일에서 급증하고 있다. 노동자의 2% 가량은 기업에서 기업으로 파견된다. 그렇게 해서 비용을 아끼는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는 그 폐해 때문에 날로 악명을 얻고 있다. 독일에는 시간제 노동자 90만 명이 있다. 이들은 파견업체에 고용돼있다. "노동 위임장"에 동의하기만 하면 파견업체는 소속 노동자를 다른 기업에 파견할 수 있다. 단, 단기간 필요한 노동력일 경우에 한해서다. 기본 개념은 이렇다 - 시간제 노동을 통해 독일 경제는 경기 변동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동시에 시간제 노동을 통해 실업자에게 다시 일자리를 줄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드러나는 폐해
현실에서 몇몇 기업들은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값비싼 정규직 대신 엄청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특히 물류나 무역 분야의 기업들은 정규직을 줄이고 시간제 노동자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파산한 옛 편의점 체인 "슐레커"는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한 뒤 그 사람들을 30% 낮은 임금에 파견 노동자로 다시 고용하려 하기도 했다. 그런 행위는 법적으로 금지돼있다. 전국 인력서비스기업인협회 폴커 엔커츠 회장은 "그게 우리를 석기시대로 되돌려놓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나쁜 이미지는 점차 강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파견업체가 제공하는 대부분의 업무가 임시직이라는 점이다. 고용의 34% 가량이 임시직에 해당한다. 이런 활동은 시간제 노동자에게 특별한 교육이 필요 없다. 그래서 시간제 노동자들은 건설 현장을 청소하거나, 선반을 정리하거나, 창고에서 화물 팔레트를 놓는다. 당연히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게다가 원청업체는 파견업체에 온갖 요구를 한다. 그래서 시간제 노동자들은 더 압력을 받는다.
시간제 일자리의 불편한 진실
오랜 경력을 가진 건설현장 감독 라이너 씨는 몇 년 전부터 작은 파견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파견업체에선 라이너 씨를 건설회사로 파견했다. 라이너 씨는 하루에 14시간까지 고된 육체노동을 한다. 대체로 안전 장비도 없다. 그리고 시급은 겨우 5유로다. 이게 가능한 건 수많은 엄격한 법적 규제를 피해갈 수 있게 해주는 이른바 노동 위임장 때문이다. 라이너 씨는 "요즘 내 자존심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게다가 라이너 씨가 버는 돈으로는 가족을 부양할 수도 없다. 생계를 위해 라이너 씨는 연방노동청에 매월 나오는 수당을 신청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라이너 씨 같은 저임금 노동자를 위해 연간 약 5억 유로를 지출하고 있다.
창고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는 피터 씨도 고충이 있다. 초과근로를 하면 원래 특별 수당을 받게 돼있다. 출근부에도 그렇게 적혀있다. 하지만 피터 씨는 아직 수당을 받아본 적이 없다. 피터 씨는 "내가 수당을 요구하면 해고 위협을 받는다"고 고발했다. 실제로 동료가 사측과 맞서다 해고됐다고 한다.
금속노조를 비롯한 노동조합들은 임시직을 위주로 한 소규모 파견업체들이 임금을 매우 적게 준다는 점을 보여주는 몇몇 사례를 정리하기도 했다. 파견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라는 요구를 자주 받는다. 예를 들어 병가는 연차로 대체되거나 임금을 깎는 구실로 이용된다.
시간제 일자리, 기회가 될 수도
파견업협회의 안네 로스너 씨는 자신도 파견업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업계 규정을 지키지 않는 다른 기업들을 보며 분노한다. "다같이 더러운 경쟁을 벌이게 되는 거다. 이건 옳지 않다. 상당히 긍정적인 사례도 많기 때문이다." 로스너 씨의 설명에 따르면, 시간제 노동자의 3분의 2는 양질의 일자리에서 문제 없이 일하고 있다는 거다. 회계법인이나 무역회사, 자동차 회사에서 사무직, 산업기사, 공학자로 말이다. 로스너 씨는 "시간제 노동자의 70%는 노동 환경에 만족하고 있어서 파견업체에 계속 머물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많은 시간제 노동자들은 건실한 기업에서 무기 계약을 맺고 일하면서 사회보장도 받고 있다. 일반적인 노동시장에서 제공받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크리스마스 수당, 고용보험과 함께 휴가 30일도 주어진다. 예전에 KFZ에서 산업기사로 일했던 롤란트 자이버리히 씨는 지금 파견업체에서 지게차 기사로 일한다. 자이버리히 씨는 "난 원래 디스크 때문에 일을 그만 둬야 했지만,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다시 기회를 얻게 됐다"며 기뻐했다. 영업사원 자스차 아이젠후트 씨도 시간제 일자리의 장점을 강조한다. "다양한 회사를 경험해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파견된 업체에 정식 고용되는 경우도 있다. 쾰른경제연구소의 집계에 따르면 최근 몇년 간 전체 시간제 노동자의 25%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한다.
시간제 일자리 정상화를 위해
시간제 일자리 업계는 최근 직능단체 두 곳과 업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미 엄격한 법률이 있고, 협회 차원에서 제정한 윤리강령이 있으며, 연방노동청이 강력한 통제를 하고 있다. 원청업체의 정규직과 파견 노동자에게는 같은 임금을 주는 것이 원칙이다. 임시직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 8.19유로가 적용된다.
4년 전부터 파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외머 일마츠 씨는 새로운 규제를 환영한다. 이런 규제는 업계의 불공정한 '임금 덤핑' 관행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난 최저임금제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난 우리 회사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싶다."
일마츠 씨는 연방노동청의 강력한 통제도 지지했다. "그렇게 해서 개별 노동자들에 대한 행동 기준이 만들어질 거다." 노동자들이 적정 임금을 받는지, 휴가를 요구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가 증명될 것이다. 일마츠 씨는 시간제 노동자 100명마다 은행에 2천 유로를 예치해야 한다. 경영 상황이 나빠졌을 때 지급될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