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정치'의 위력 -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지난해 총선이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던 책인 듯하다. 게다가 대선마저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고, 저학력-저소득층일수록 박 후보 지지율이 높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이 책의 제목은 그대로 '자명한 사실'이 돼버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게 단순히 서민들의 '계급배반 투표'를 규탄하는, '국민 개새끼론'의 또 다른 버전이 돼버려선 곤란할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바로 그런 태도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진보 진영에서 멀어지게 하고, 보수의 선동에 설득력을 더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담한 제목 덕분에 미국 유권자들의 투표 행태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12페이지짜리 서문만 읽으면 이 책의 주제를 모두 살펴봤다고 생각해도 좋다. 첨예한 대립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문화·도덕적 쟁점을 통해 극우파들은 대중을 선동하고 정권을 잡는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핵심 요지는 아래 문장에 다 들어있다.
"낙태 반대에 투표하고, 자본이득세를 철폐한다. 미국을 다시 강하게 만들기 위해 투표하고, 산업의 쇠퇴를 받아들인다... 정부 비난을 중지하는 데 투표하고, ... 모든 분야에 걸쳐 합병과 독점을 인정한다. 테러분자에 맞서 싸우기 위해 투표하고, 사회보장제도의 민영화를 수용한다." (p. 17)
이어지는 페이지는 이같은 전략이 수십 년동안 실제로 어떻게 사용돼왔는지 상세하게 묘사하는 데 할애되는데, 개인적으로는 굳이 시간을 들여 읽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우리와 구체적 쟁점은 달라도, 상황이 전개되는 구도를 놓고 보면 시사점이 있다.
"선거 쟁점에서 중요한 경제 문제들이 사라지면 민주당과 공화당을 구별하기 위해 남는 것은 사회적 문제 뿐[이다]." (p. 222)
캔자스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어느 지역에 살든 전통적인 인종차별 문제와는 무관하게 우경화하고 있다. 인종주의가 점점 힘을 잃게 되면 보수주의도 서서히 시들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p. 226)
저소득층에게 익숙한 전통적 도덕 가치를 자극하고, 진보 진영을 '오만한 엘리트 집단'으로 묘사하면서 거기 맞서는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유도한다는 게 저자가 분석한 극우파의 전략이다.
문제는 개혁이나 진보라는 게 대부분 기존의 익숙한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담게 마련이고, 때문에 저런 극우파의 공격이 설득력을 갖기 쉽다는 거다. '그러니 깨어있는 시민이 필요하다'는 한탄 전에,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쉽고 설득력있게 다가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야권에 필요한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