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이야기

미국의 중국 정책 - 봉쇄인가 협력인가(번역)

술이부작 2013. 3. 28. 22:18

※ <포린 어페어스> 2013년 3/4월호에 실린 '사라진 억지 전략(원문 링크 - The Lost Logic of Deterrence)'을 번역했습니다. 필자는 냉전 시대와 같은 중국 봉쇄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게 아니라도 분명한 정책 결정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지역적인 '사소한' 문제를 포기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한반도 문제도 해당이 되는 것 같아 가슴이 서늘합니다. 미중 갈등이 심해지면 우린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고, 양국이 협력한다면 중국의 힘이 강해지면서 우리에게도 입김을 끼치겠죠.

 

거기다 중국에 대한 모호한 태도와 달리, 북한에 대해 미국은 최근 단호한 억지 방침을 세운 것 같은데요, 이렇게 되면 결국 '공포의 균형'에 바탕을 둔 냉전이 계속되는 거겠죠. 우리나라 국민을 인질로 삼은 채 말입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기 힘들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할지 답은 찾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본문은 소제목별로 대 러시아 정책, 대 이란 정책, 대 중국 정책을 다루고 있으니 스크롤의 압박을 느끼는 분은 관심있는 부분만 읽으셔도 좋겠습니다. 북한 문제는 이란, 중국과 관련해 함께 언급됩니다.

 

 

사라진 억지 전략

리처드 베츠(콜럼비아 대학교 교수, 정치학)

 

억지론이 더 이상 예전같지 않다. 20세기 후반, 억지론은 미국 안보 정책의 근간이었다. 누구나 억지론의 목적과 논리, 효과를 이해하고 있었다. 억지론은 소련을 봉쇄하는 군사 전략의 핵심이었으며,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일 없이 냉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필수 요소였다. 하지만 최근 십여 년간 억지론은 사라졌고 미국 국방정책은 점점 더 나빠졌다.

 

냉전이 끝난 뒤에도 미국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불필요하게 악화시켰다. 억지 전략을 취하지 말아야 할 곳에서 억지에 집착한 것이다. 더 중요하게는, 억지 전략이 꼭 필요한 곳에서 미국은 채택을 거부했고, 이라크와 불필요하고도 재앙적인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이란과 또 다른 전쟁 위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으로, 중국에 대해 워싱턴은 억지 전략을 채택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분열돼있다. 이런 혼란은 위기와 함께 베이징의 위험한 오판을 초래할 수 있다.

 

억지 전략을 잘못 적용하는 것은 개념 자체에 대한 잘못된 이해, 위협 평가에서의 오류, 역사의 망각, 근시안적인 정책 결정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억지 전략에 대한 불신에서 회복될 수 있고, 잘못된 전략이 채택된 곳에서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분쟁 가능성이 불투명한 곳에서 돌발 상황을 맞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억지란 모순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이다. 적에 맞서면서, 전쟁을 피한다. 학계에서는 이 주제에 관해 무수한 변수를 연구해왔지만, 기본 개념은 간단하다. "방어 측이 공격을 격퇴할 수 있다는, 혹은 감내할 수 없을 정도의 보복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안다면 적은 먼저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최선의 경우, 불필요한 억지 전략은 자원 낭비다. 최악의 경우, 억지 전략은 분쟁을 막는 게 아니라 유발할 수 있다. 그리고 억지 전략이 적절한 경우에도 실제로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적이 자살을 불사하거나 보복 공격에 노출되지 않는 경우다. 따라서 찾기도 어렵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테러리스트보다는, 위치가 확실하고 생존을 원하는 정부를 상대로 억지 전략을 쓰는 게 더 좋다. 또, 날로 중요성이 더해가는 사이버 세계에서 억지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공격자의 정체를 완벽히 알아내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억지 전략을 쓰기로 하고, 또 싸울 의지가 있는 경우엔 확실하고 분명한 경고를 해서 적이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억지 전략은 허풍일 때만 모호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큰 위험은 반대의 경우에서 온다. 미국이 억지 전략을 미리 선언하지 않고서는 예상치 못한 공격이 일어났을 때 싸우기로 결정하는 때이다. 미국이 급작스럽게 한국전쟁과 걸프전에 참전하게 된 게 바로 이런 혼란 때문이다. 두 경우 모두 침략자들은 미국의 공식 성명을 보고 미국은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억지 전략은 만능이 아니다.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대안이 더 나쁜데도 억지 전략을 거부하는 것 역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 불필요한 강경 정책

 

소련 입장에서 볼 때 냉전은 반만 끝났다. 서방의 억지력이 조용하지만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냉전 시기, 소련의 위협은 거대해보였기 때문에 억지 전략은 필수였다. 모스크바의 군사력은 대략 170개 사단이 서유럽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4만 개 가까운 핵무기가 있었다. 소련의 의도에 관해선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공식 입장은 소련이 매우 적대적이라는 것이었다. 서방은 나토와 미 전략공군사령부를 통해 충분한 대항 군사력을 배치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40년 이상 억지 전략이 유지됐다. 베를린 위기와 쿠바 미사일 위기, 제 3세계에서의 대리전이 있었지만, 소련이 서방을 향해 직접 군사력을 사용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온건파는 그렇게 많은 억지력이 필요한지 의문을 품었지만, 매파는 가능한 위협을 상대로 억지 전략이 실패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서방의 승리 이후에도 암묵적인 억지 전략이 계속됐다. 나토에 새로 가입한 옛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들의 요구, 구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의 불안한 정치 상황, 그리고 단순한 관성 때문이었다. 2012년 미 대선에서 러시아가 미국의 "첫 번째 지정학적 적국"으로 남아있다고 말한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는 일반적인 견해를 전달했을 뿐이었다.

 

나토에 배치된 미군 시설 대부분은 '역외 작전'에 대한 군수 지원을 맡고 있고, 미국 국방 예산이 긴축되고 있긴 하지만 2개 전투 여단이 여전히 유럽에 주둔하고 있다. 상징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나토의 확장과 함께 이들은 모스크바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 협상도 계속하고 있다. 양국이 서로의 군사력을 두려워하고 전쟁 수행 능력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공식적인 군비 통제 협상을 하고 상호 억지를 제도화할 이유가 없다.

 

이런 냉전의 연속은 심각한 적대관계일 때에나 이해가 되는 것이다. 워싱턴과 모스크바의 관계는 여전히 적대적이지만, 심각한 건 아니다. 냉전이 정말 끝났고, 서방이 정말로 이겼다면, 암묵적인 억지 전략을 계속하는 건 별것도 아닌 러시아의 위협을 막는 게 아니라 정치적 분열을 키우는 의심을 초래하는 일이다. 냉전 시기와 달리, 이제는 러시아가 나토에 위협이 된다기 보단 그 반대이다.

 

첫째, 군사력의 동서 균형은 냉전의 절정기에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우위에 있거나 최소한 동등했지만, 이제는 나토 우위로 옮겨갔다. 심각하게 기울어진 것이다. 러시아는 옛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 혼자 외롭게 떨어져나왔다. 옛 동유럽 동맹국을 잃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나토 회원국이 돼 반대편에 붙었다. 군사비 지출, 군인 수, 인구, 경제력, 영토 등 국력을 측정하는 어느 단위로 봐도 나토는 러시아를 상대로 엄청난 우위에 있다. 러시아의 군사력을 지탱하는 유일한 수단은 핵무기다. 하지만 소련이 공격 수단으로 핵무기를 쓸 거라는 가정은 비합리적이다. 재래식 전력을 이용한 공격의 버팀목으로 쓰는 건 가능하겠지만, 재래식 전력은 이제 나토가 한참 우위에 있다.

 

러시아의 의도를 따져봐도 능력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위협이 되지 않는다. 러시아 지도층이 불쾌한 정책을 추진하긴 하지만, 그들이 서방을 공격하는 게 국익일 것이라고 판단할 합리적 근거가 전혀 없다. 20세기에는 두 진영 간에 격렬한 영토 분쟁이 있었고, 어느 편의 이념이 세계를 지배할 것인지 거대한 투쟁이 있었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의 러시아는 독재적이긴 해도 소련과 달리 세계에 혁명 이념을 전파하는 전위가 아니다.

 

러시아와 나토 간 전력 불균형이란 게 러시아의 이익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거나, 군사력이 열등하니 미국이 마음껏 러시아를 괴롭혀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러시아는 여전히 강대국이며 러시아의 정책과 외교 방향은 중요하다. 실제로 만일 러시아가 떠오르고 있는 중국과 손을 잡는다면 미국에 대한 전략적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너무 많은 미국인들이 별 생각 없이 중·러 적대관계는 필연적이라고 믿는다. 사실은 일본과 나토,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에게 서로의 차이를 접어두고 서방의 압력에 공동으로 대응하도록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중러 관계가 우호적이지 않더라도,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것은 불필요한 위험을 불러온다. 2008년 그루지아와 러시아의 전쟁에서 드러났듯이, 지역 내의 미해결 영토 분쟁은 서방보다 소련에 더 중요하다. 만일 나토가 그루지아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여 억지력을 더욱 넓힌다면(이는 오바마 행정부가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으며, 부시 행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지역에서 분리주의 운동이 활동하고 있는 러시아에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다. 이는 강대국의 일반적 권한인 '세력권'이란 걸 러시아는 전혀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선언하는 일이다. 나토의 역할은 전쟁 억지에서 직접적인 지배로 바뀔 것이다. 이는 한때 중국과 소련이 서방의 진정한 의도라고 우겼던 바로 그대로다. 최악의 경우 그루지아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와의 위기를 재촉하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어떤 경우든 서방이 보다 확실히 군축에 나서고 추가적인 나토 확장 협상을 끝내는 것보다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맘에 들지 않더라도 모스크바 정권과 안정적인 평화를 유지하는 게, 러시아와 인접한 국가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원하는 것보다 우선이어야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나토가 러시아까지 포함하는 진정한 집단안보기구가 아니라 러시아를 배제하는 동맹으로 남아있는 한, 러시아는 나토의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만 빼고 사실상 모든 유럽 국가를 나토에 가입시킨다고 해서 유럽의 평화가 공고해지진 않는다. 러시아가 나토에 가입하는 건 아직은 망상에 가깝다. 서방에서 그런 움직임은 없고, 제안이 있을 경우 러시아가 받아들일 거라는 조짐도 없다. 하지만 러시아가 민주주의로 돌아올 경우 나토 가입 제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회원국들이 내비칠 경우, 나토는 자국에 대한 위협이라는 러시아의 주장을 반박하기 쉬워질 것이다.

 

 

- 배우지 못한 교훈

 

러시아를 과잉 봉쇄한 것은 실수지만 반대의 경우만큼 심각하진 않다. 철저히 억지했어야 할 곳을 하지 않는 경우다. 이같은 실수는 핵확산, 특히 이란 문제에 대처하는 미국의 노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미국 정책결정자들은 잠재적인 핵확산 국가에 대한 억지 전략을 수립하는 대신 예방전쟁을 치르는 것을 선호해왔다. 당국자들은 급진적인 정권을 상대하는 데 억지 전략은 너무 약하다고 우려하는 것 같다. 사실은 억지 전략 자체가 신중한 적이 아니라 위험한 적국에 맞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말이다. 이같은 편향은 특별히 우려스럽다. 이라크를 상대로 한 뼈아픈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왜 억지 전략이 더 나은지 생생하게 경험했는데도 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냉전 이후 최초의 대규모 분쟁, 1990-91년 걸프전이 일어나기까지 억지 전략은 쓰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공격한 것을 볼 때 억지는 불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결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미국이 후세인을 억지하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쿠웨이트를 침공할 경우 워싱턴의 단호한 반격을 불러올 것이라는 점을 알았다면 후세인은 결단코 자제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부시 행정부는 그런 위협을 한 적이 전혀 없고, 독재자가 마음대로 오판하도록 놔뒀다.

 

부시는 전쟁을 막기 위한 위협을 할 준비가 안 돼있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은 완전히 예상치 못한 우발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예상치 못했고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을 치렀던 40여년 전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1949년, 미 육군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남한이 미국의 아시아 방위 영역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이듬해,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도 같은 의미의 언급을 했다. 이같은 발언은 미국이 생각하는 3차 세계대전 시나리오에서 한국의 중요성은 낮았다는 사실을 반영했다. 북한이 남한을 공격했을 때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그래서 굉장히 놀랐다.

 

2003년, 아들 부시는 놀랐다고 변명할 수 없다. 부시는 억지 전략 대신, 이라크가 언젠가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즉각 전쟁을 시작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참사였다.

 

전쟁을 선동한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억지 전략을 통해 사담을 견제하는 게 더 큰 재앙을 낳았을지 단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담을 결코 억지할 수 없었다고 볼만한 증거도 없다. 후세인은 1980년에 이란을 무자비하게 공격했고 10년 뒤엔 쿠웨이트를 침공했지만, 이들 경우엔 자신을 막을 압도적인 세력이 없다고 믿을만한 이유가 있었다. 후세인은 광폭한 폭군이었지만, 자멸적이진 않았다. 미국이 개입할 것이라고 위협했을 땐 결코 공격하지 않았고, 1991년 미군의 공습에 맞서 생화학 무기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런 무기를 사용할 경우 무자비한 보복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통해 미국이 억지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냉전 시대에 대한 미국의 경험에 비춰볼 때 후세인, 그리고 지금은 이란 지도자에 대한 미국의 공포는 과장된 것 같다. 역대 대통령은 모택동과 스탈린을 상대로 한 예방전쟁을 검토는 했어도 거부했다. 이들은 오늘날의 적보다 더 광신적이고 공격적이었다. 모택동은 이런 소름끼치는 발언을 했다. 핵전쟁의 가능성은 "나쁘지 않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를 멸망시키는 것은 세계 인구의 3분의 2를 잃을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테헤란의 지도자들은 아직 여기 비견될만한 말을 한 적은 없다.

 

냉전에서 봉쇄정책의 긍정적 결과, 이라크에 대한 예방전쟁이라는 끔찍한 실수를 고려할 때,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미국 당국자들이 억지 전략을 매력적인 대안으로 선택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워싱턴은 핵무장한 북한에 실제로 이렇게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란이 언젠가 침략을 위해 비합리적으로, 도발당하지 않은 경우에도 핵무기를 사용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이란 지도자들이 국가적 자살에 흥미를 갖고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이란이 선제 핵공격을 할 경우 그렇게 될 것이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비밀 작전에 대항하는 것이라며 테러를 지원해왔다. 하지만 그 동기가 얼마나 공격적이든 간에, 테헤란의 혁명 정권이 적국을 상대로 정규전을 벌인 일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의 잠재적 핵보유를 억지할 전략을 세우기보단 예방전쟁을 선호해왔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제재와 외교를 통해 이란의 핵보유를 막으려는 희망을 갖고 있긴 하지만, 만일 이란이 핵무기를 생산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공격의 여부가 아니라 시기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봉쇄 정책"이 아니라 "이란이 핵무기를 갖는 것을 방지하는 정책"을 갖고 있다고 단호히 선언했다. 다른 당국자들도 이 점을 거듭 강조했다. 외교정책에서 약속은 거듭될수록 돌에 새긴 것과 같아진다. 막상 일이 닥쳤을 때 물러서는 것은 옳은 일일지 몰라도 당혹스러운 후퇴로 비칠 것이다.

 

억지 전략을 거부하는 배경에는 무자비한 보복이 예상되더라도 이란은 핵무기를 쓰기로 결정할 것이라는 논리가 있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이미 핵무기를 개발한 다른 불량 정권들보다 이란이 더 큰 위험을 가져다 준다고 믿을 이유는 없다. 가장 분명한 사례가 북한이다. 미국인들은 북한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여러 해 동안 계속돼 온 북한의 광신적 전쟁 위협과 테러리스트 행동은 이란보다 훨씬 심하다.

 

이란 문제로 최소한의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전쟁 개시에 따르는 커다란 위험은 무시한다. 이란의 예상치 못한 반격, 이를 테면 생물학 무기의 사용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은 접어둔다고 해도, 미국의 자산에 대한 공개, 혹은 비밀 군사 작전을 통한 이란의 보복 위험은 명백하다. 2003년 이라크에 대한 선제 공격은 성공했지만, 이는 미국이 전쟁을 시작했다고 해서 반드시 원하는 시기와 방법으로 끝낼 수는 없다는 점을 일깨울 뿐이다. 실제로 미국과 이스라엘은 과거에 그들이 참전하는 전쟁의 비용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미국은 걸프전에선 예상보다 적은 비용을 치렀지만, 한국, 베트남,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2차 이라크 전쟁에서는 훨씬 큰 대가를 치렀다. 이스라엘도 1967년 6일 전쟁에선 예상보다 피해가 적었지만 1973년 제 4차 중동전쟁, 1982년 레바논 전쟁, 2006년 대 헤즈볼라 전쟁에선 크게 놀랄만한 대가를 치렀다.

 

이란을 상대로 한 전쟁은 부정적인 효과도 낳을 것이다.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상군 상륙과 점령 없이 공습만으로 이란의 핵무장 정책을 확실히 끝낼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지연시킬 수 있을 뿐이고, 핵무기 제조를 향한 이란인들의 열정은 더욱 강해질 것이 확실하다. 이란의 핵 능력이 단지 잠시 약화되기만 하고 의도에는 더욱 불이 붙을 경우, 위협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선제 공습은 현재 대 이란 제재를 지지하는 국제 연대를 분열시킬 것이고, 이란 내부의 반 체제 세력도 약화시킬 것이며, 오만한 미국인들이 무슬림을 공격한 또 하나의 사례로 세계에 인식될 것이다.

 

이란과 전쟁을 치러서 다른 나라들이 핵무기 보유를 포기하게 할 수 있다면 이런 비용을 치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핵보유 노력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이라크의 핵보유를 막으려는 부시의 전쟁은 북한의 핵보유를 막지 못했고, 몇 년 뒤 북한은 자체 핵실험을 진행했다. 이란도 포기하지 않았다.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데엔 영향을 끼쳤을지 모르지만, 몇 년 뒤 워싱턴이 카다피에게 준 보상은 추방과 죽음이었다. 핵무기 포기의 대가가 어떤 것인지, 미국의 적들에게는 전혀 달갑지 않은 교훈이다.

 

미국 지도자들이 억지 전략을 채택하기 주저하는 한 가지 이유는, 억지 전략의 가장 강력한 형태, 즉 보복으로 적국의 경제와 인구를 초토화시키겠다는 위협이 더 이상 정당화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1945년에는 어떤 미국인도 일본 민간인 수십만 명을 불태워 죽이는 데 반대하지 않았고, 냉전 기간에도 소련의 공격에 더 큰 규모로 보복한다는 원칙에 반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오늘날 탈냉전 시대의 규범과 국방부의 변호사들은 고의로 민간인을 목표로 삼는다는 생각은 전혀 생각도 하지 않는다. 만일 이란 핵무기가 어딘가에서 터지면 그 대가로 이란인 수백만 명을 죽이겠다고 미국 정부가 공식 선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금기 때문에 전쟁을 선택한다는 건 말이 안 되고, 그 때문에 억지력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만일 핵무기가 사용될 경우 이란 국민이 아니라 정권을 끝장낼 것이라는 위협 정도면 효과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런 종류의 무차별 반격은 의도치 않은 피해를 무수히 내겠지만, 미국 당국자들은 상대방이 믿을만한 위협을 할 수 있고, 이란을 침공하겠다는 공약으로 더욱 위협을 강화할 수 있다. 이란의 핵공격 이후라면, 2003년 이라크에 했던 것보다는 훨씬 합리적인 조치다. 그리고 설령 법적인 고려 때문에 미국이 이란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보복을 하지 못하더라도, 이스라엘 지도부는 만일 이란의 핵공격을 받는다면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존망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 강화된 위협은 이란 혁명의 성과와 심지어 이란 사회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란의 행동을 압도적으로 제약할 것이다.

 

이란의 핵보유는 위협적인 신호다. 하지만 어떤 위험에는 확실한 해답이 없고, 서로 다른 위험성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이란과 전쟁을 벌이는 게 좋은 억지 전략보다 더 안전하다는 확실한 증거는 전혀 없다.

 

 

- 불분명한 신호

 

억지 전략에 관한 혼란 때문에 워싱턴에 닥친 장기적으로 가장 위험한 문제는 중국에 대해 미국이 이 쪽인지 저 쪽인지 선택을 피하고 있다는 데서 온다. 미국은 중국을 봉쇄 대상인 위협으로 볼지, 친선을 유지할 열강으로 볼지 결정해야 한다. 미국 정책결정자는 오랜 기간 두 전략을 모두 채택하려 해왔다. 그런 모순은 정치적으로 자연스럽긴 하지만, 명백한 모순을 노출하지 않는 동안에만 괜찮은 것이다. 이런 전략은 따라서 계속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역사 속의 다른 신흥 강대국과 달리 중국이 언제까지나 겸손하게 행동하기로 결정하거나, 미국만큼 자국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한 말이다.

 

미중 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 때문에 군사적 분쟁이 일어날 수 없으므로 미중 관계에서 억지 전략 여부는 문제가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적대 관계는 말도 안 되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는 건 적대 관계를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만들어 버리는 위험한 일일 뿐이다. 반대의 시각, 즉 중국의 부상은 위협이고 군사적으로 억지해야 한다는 견해는 힘을 얻고는 있지만 공식 정책으로 나타난 적은 없다. 한편, 미국 군사력의 아시아에 대한 '중심축 이동', 또는 '재균형'이라는 오바마 행정부의 선언에는 어디서, 언제, 왜, 어떻게 미 병력이 중국과의 전투로 보내질 것이라는 일관된 신호가 없었고, 중심축 이동의 가장 분명한 상징인 호주 주둔 미 해병대가 필요한 확실한 작전상 이유도 없다. 문제는 억지 전략이 부당하게 기각됐거나 채택됐다는 게 아니라, 전략이 뒤죽박죽이라는 것이다.

 

이런 불분명함에 더해서, 미국은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인내심이 언제, 어떻게 끝날 것인가라는 문제를 계속해서 무시하고 있다. 중국은 통일의 여부가 아니라 시기가 문제라는 입장을 항상 분명히 해왔다. 대만의 독립 선언은 군사적 행동을 불러올 것이라는 중국의 위협에 따라 미국은 대만에 독립 선언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만 하면서 몇 년 동안 결정을 미뤄오기만 했다. 하지만 2001년,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은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부시 대통령은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대만이 중국에 저항하는 지방의 하나로 남아있는 한 대만을 방어하겠지만, 독립국가일 때는 그러지 않겠다는 정책을 세운 게 돼버렸다. 이런 태도는 일부 전문가들에겐 절묘한 해결책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미국인의 상식에는 어긋나는 일이고, 중국에 애매한 신호를 줌으로써 미국의 위기 대응 능력을 잠식한다.

 

한편 최근 남중국해의 분쟁 도서를 두고 긴장이 다시 고조되는 것처럼 갈등이 생기고 있다. 다른 전략적 문제에 사로잡힌 나머지, 미국은 어떤 상황이라면 중국과 전쟁을 감수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분명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예상치 못한 분쟁을 향해 떠밀려가고 있다. 이런 혼란과 망설임 때문에 미국은 중국에 '금지선'에 대한 분명한 신호를 주지 못하고 있고, 우발적인 위기, 오판, 긴장 고조의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2012년 중반 중국과 필리핀의 분쟁 도서를 둘러싼 해상 훈련은 서막에 불과했고, 이어서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의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갈등은 더욱 위험한 것으로 워싱턴을 완전히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미국이 처음 보인 반응은 혼란한 모순이었다. 국무부 대변인은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섬과 관련해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지만, 이 섬이 방위조약의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서 언급한 조약은 미일 상호방위조약이다. 리언 파네타 국방장관도 당시 미국은 지역내 영토 분쟁에서 어느 한 편을 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또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면서 중국에 대한 위협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것들은 다 애매한 억지 전략이다. 전략적 기획이라기보단 수사적인 임기응변이다. 이는 도발과 약점을 동시에 노출하는 위험한 행태다. 미국은 중국을 향해 섬들을 점령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면서도 그걸 막겠다는 위협은 하지 않는다. 일본을 향해선 해당 섬을 방어할 조약상 의무를 미국이 지고있다고 안심시키면서 말이다. 뒤이은 부연 설명이나 양국에 대한 비밀 약속이 모순을 완화할 수는 있겠지만, 공식 발언은 미국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미국을 위기가 고조되면 접을 수 있는 종이 호랑이로 볼 것이다. 그럼에도 실제 위기가 닥치면, 대비하지 못했던 사건들이라도 압력 때문에 미국은 전쟁을 선택함으로써 적국을 놀라게 할 수 있다. 1950년 남한이나 1990년 쿠웨이트에 대한 침공 이후에 미국이 그랬듯이 말이다.

 

이 위험한 혼란 속에서 장기적 대안은 논리적으로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중국 봉쇄 정책을 명백히 하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영토 확장을 군사적 행동과 정치적 압력을 통해 저지한다는 뜻이다. 이건 너무 앞서나가는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은 봉쇄를 공격적인 위협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이같은 방침을 조심스럽게, 중국의 권리 침해가 아니라 현상 유지라는 방어적 목적을 강조하면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이 방안의 장점은 오해의 여지가 없고, 그래서 억지 전략이 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다. 금지선이 분명하고, 따라서 예상치 못한 치킨 게임이 누구도 원치 않는 전쟁을 낳을 확률을 줄일 것이다. 하지만 대가도 매우 클 것이다. 신냉전이 시작되고 여러 유익한 협력관계가 방해받을 것이다. 또한 미국은 대만 문제로 중국과 전쟁을 감수할 것인지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에 관해 미국 유권자는 물론 워싱턴의 외교 정책 엘리트 사이에서도 합의는 고사하고 진지한 논의조차 없다.

 

봉쇄 정책인 "빨간불" 전략이 불필요하거나 너무 대가가 크다면, 정반대인 두 번째 대안은 협력(accomodation), 즉 파란불이다. 중국의 목표가 제한적이고 앞으로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면, 상승하는 중국의 국력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갈 위험이 없다면, 부상하는 초강대국과 갈등을 겪을 미국의 동맹국들의 이익을 무시하기로 한다면, 협력 정책은 합리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 가정은 모두 매우 의심스럽다. 미국이 중국과 협력한다는 건 초강대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이고, 중국은 자연스럽게 초강대국의 특권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대표적으로 주변 지역에서의 압도적 세력권같은 것들이다. 미국은 또한 사소한 분쟁은 중국의 약한 이웃 국가보다 중국의 편에서 해결될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협력 정책을 택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대만 문제가 될 것이다. 지난해 영유권 문제로 긴장이 고조된 무인도 관련 분쟁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봉쇄 정책에 대한 합의가 없는 만큼이나, 미국인들은 조금이라도 유화정책처럼 보이는 것에는 질색한다.

 

두 가지 대안 모두 그다지 끌리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이 문제를 피해온 것은 놀랍지 않다. 일관성 없는 타협은 외교 전략에서 일반적이고 때로는 합리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중국 세력이 부상하고 중국의 자제력이 줄어든다면, 그것은 우유부단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전략이 된다. 현재 미국의 정책은 노란불 정도에 해당할 것인데, 이건 속도를 줄이라는 경고지만 단호한 정지 신호에는 못 미친다. 노란불을 보면 어떤 운전자들은 속도를 더욱 높인다.

 

대만이 평화적으로 항복하지 않는 한, 중국의 부상이 가져올 문제에 대한 고통 없는 해결책은 없다. 시간을 질질 끄는 건 꽤 오랫동안 효과적일 수 있지만, 딱 중국의 인내심이 지속되는만큼 뿐이다. 일단 위기가 발생하면 애매한 억지 전략은 갈등을 막는 게 아니라 유발할 수 있다. 그런 전략은 중국의 방향 전환을 유도하기엔 너무 약하지만, 미국이 방향을 바꾸지 못하도록 할만큼은 강해서 충돌을 부르는 것이다. 유일한 해답은 초강대국으로서 중국완전한 권리 요구를 미국이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위기가 발생했을 때 분명한 금지선을 그을 것인지 분명한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러시아에 대한 온건한 억지 전략은 불필요하고 부정적인 효과가 있긴 하지만 재앙적이진 않다. 이란에 대한 억지 전략도 확실한 대안은 아니지만 전쟁을 하는 것보단 낫고, 전쟁이 핵개발 위협을 악화할 수 있는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중국이 제기하는 심각한 장기적 정책 딜레마를 두고 억지 전략의 채택 여부를 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선택이지만, 결정을 피하는 것은 딜레마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 뿐이다. 미래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선 지금 약간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억지 전략에 다시 초점을 맞추면 이런 전략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냉전 때는 이런 전략이 모두에게 각인되고 미국 전략의 기본 요소로 보편화돼있어서 '억지'라는 말은 국방 정책의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유행어가 됐다. 하지만 요즘은 전략 토론에 쓰이는 단어에서 거의 사라져버렸다. 미국 정책당국자들은 억지 전략의 기본을 다시 배우고, 억지 전략이 제대로 쓰였을 때의 가치와 그렇지 않을 때의 결점을 재발견해야 한다. 계속 혼란스럽게 있는다는 대안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항상 강조해 온, 변화를 위한 날이 왔다고 결정하는 경우같은 때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