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야기
부의 미래, 한심하고 낡은 미래학
술이부작
2011. 8. 30. 21:29
(2006년 12월 31일에 썼던 글입니다.)
'2006년 8월 20일 1판 1쇄 발행, 2006년 11월 25일 1판 107쇄 발행.' 내가 산 <부의 미래> 판권지에 써있는 발행 상황이다. 이 정도 추세라면 지금쯤 130쇄도 넘겼을 듯 싶다. 세상에, 이건 미친 짓이다. 얼마나 잘 팔리는지, 속표지에는 아예 '____님께, ____드림'이라고 선물용 메세지까지 인쇄돼있다. 성경 말고는 이런 책을 본 기억이 없다.
아닌 게 아니라 <부의 미래>는 12월 31일 현재 교보문고 집계 베스트셀러 종합 5위에 올라있다. 그러면 이 책은 그렇게 많이 팔린 만큼 우리에게 새롭고 유용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가? 안타깝지만, '미래학자'가 쓴 책이라고 하기에 이 책은 너무나도 케케묵은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새로운 통찰이라고는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장장 6백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라 간단히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앨빈 토플러가 말하는 핵심 내용은 대략 이렇다. 부를 창출하는 기반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학에서 흔히 말하는 기반(fundamental)이 사실은 극히 피상적인 것들만을 반영할 뿐이라면서, 보다 근본적인 요소는 '심층기반(deep fundamental)'이라고 주장한다. 심층기반은 시간, 공간, 지식이다. 사회 변화의 가속화에 따른 시간적 속도의 변화, 부를 창출하는 공간의 변화, 지식기반경제로의 이동으로 인해 앞으로의 경제는 혁명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부는 무엇인가? 토플러는 자신이 말하는 부가 단순히 돈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부란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가 '부의 창출'을 말할 때, 이는 곧 욕망의 창출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그러니 그가 말하는 부란 사실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돈 또는 이윤을 의미한다고 봐도 큰 차이는 없다. 실제로 그는 '가난의 미덕을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대로 머물 수밖에 없다(39쪽)'고 조롱한다.
2. 심층기반 1 : 시간?
도대체 시간이 어떻게 경제와 연관된다는 말인가? 토플러는 현대 사회는 너무나 급속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 개념이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인터넷에서의 3분은 영겁에 가까운 시간이다. 사용자들은 이제 한 페이지를 다운로드하는 데 8초 이상 걸리면 사이트를 떠나버린다...(중략)...18개월마다 성능이 2배로 높아지는 반도체 칩이 더해져 모든 금융거래가 거의 즉시에 체결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외환 딜러는 5분의 1초 내에 거래를 완료할 수 있을 정도(93~94쪽)"라고 강조한다.
사회가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 현대 사회만의 특성일까? 하지만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혀를 내둘렀던 것은 오늘날의 사람들만이 아니다. 가령 약 160년 전에 쓰여진 다음과 같은 글을 보라.
"끊임없는 생산의 혁명적 발전, 모든 사회적 조건들의 부단한 교란, 항구적인 불안과 동요는 부르주아 시대와 이전의 모든 시대를 구분짓는 특징이다. 모든 고정되고 꽁꽁 얼어붙은 관계들, 이와 더불어 고색창연한 편견과 견해들은 사라지고, 새로이 형성된 모든 것들은 골격을 갖추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딱딱한 것은 모두 녹아 사라지고, 거룩한 것은 모두 더럽혀지며, 마침내 인간은 냉정을 되찾고 자신의 실제 생활 조건, 자신과 인류의 관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마르크스 & 엥겔스, 공산당선언)"
자본주의 체제의 형성기를 살았던 당시 유럽인들이 느꼈던 변화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미미했을까? 근대 문물이 수입되는 것을 바라보던 19세기 말의 조선인들이 느꼈던 변화의 속도는 오늘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작았을까? 토플러 씨, 엄살부리지 마세요.
그는 산업 시대의 '9 to 5' 체제가 무너지고 노동시간과 상점의 서비스 시간이 유연화되면서 새로운 부를 창출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기 출근에서 야근으로 이어지는 '유연한' 노동시간과, 새벽까지 불을 밝히는 편의점과 분식집, 유흥업소는 오늘날 한국에서 일상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부를 창출했나? 우리의 삶의 질은 얼마나 높아졌나?
그는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프리랜서가 늘어나 전통적 노동조합이 위협받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의 노동 시간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전통적 업무시간 개념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프리랜서들은 '유급휴가, 의료보험, 퇴직금 등을 어떤 경우에도 누릴 수 없으며, 시간당 최대임금은 3.6달러로 추정('인터넷을 통한 헐값의 재택근무',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창간준비3호 12면)'된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도대체 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3. 심층기반 2 : 공간?
그렇다면 공간은 어떻게 부와 연결될까. 부의 창출 시스템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공간의 변화라며 제시되는 게 고작 이거다.
"역사상 대대적인 부의 지리적 이동이 전개되고 부의 지리적인 판도가 전에 없이 바뀌고 있다...(중략)...19세기 말, 부 창출의 세계 중심은 서쪽의 미국으로 향했다...(중략)...그러나 아시아를 향한 부의 이동은 처음에는 일본으로, 그 후에는 한국과 같은 신흥 공업국으로 조금씩 움직이며 수십 년간 힘을 비축해왔다.(105~106쪽)"
뭔가 이게? 문명서진론 아닌가? 십수 년도 더 묵은, 그것도 자기 이론도 아닌 얘기를 끌어들여 새로운 것인 양 얘기하는 건 반칙이다.
그는 민족국가의 경계를 벗어난 새로운 공간의 창출 가능성을 전망한다. 전망 자체는 일리가 있지만 근거가 영 부실하다. 미국 남부와 멕시코 북부의 경제 통합을 말하고 있는데, 부시 행정부 들어 미국-멕시코 국경에는 만리장성이 쌓인 상태다. 10년째 지지부진한 '두만강 삼각지대 개발계획'을 언급하는 데에는 눈물이 날 지경이다. 토플러 씨, 공부는 하고 있는 건가요?
4. 심층기반 3 : 지식?
그래도 지식과 부의 관계에서는 명쾌한 정리가 나오지 않을까? '제3의 물결'과 '지식기반경제론'은 토플러가 원조이니 말이다. 이런 기대를 갖고 책장을 넘기는 독자는 참신한 예견 대신 식상한 과학만능주의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무용지식(obsoledge, obsolete과 knowledge의 합성어)'이라는 개념을 창안해 냈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오늘의 지식은 내일이 되면 쓸모없는 것들이 돼버린다는 뜻이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무용지식의 축적 속도도 빨라진다.
하지만 어떤 지식이 '무용'한 지식인지 대체 누가 판단하는가? 누구나 과거에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지운 파일을 나중에 복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유용한 지식만이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를테면 '역사적 지식'은 무용한가? 그럴 수도 있겠다. '부를 창출'하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무용지식을 비롯해 넘쳐나는 정보 중에서 진실을 가려낼 필요성은 커진다. 토플러는 그 방법을 6가지로 분류한다. 합의, 일관성, 권위, 계시, 내구성(역사성/전통), 과학이다. 토플러는 이 중 과학만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은 혹독한 시험을 거쳐 진실을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며, 어떤 종류의 맹신에 대해서도 천성적으로 반대하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 이 얼마나 케케묵은 관점인가! 과학적 실재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구성된다는 극단적인 사회구성주의는 거부한다 해도, 과학적 지식의 승인은 과학자 사회의 합의에 의하며 그것은 결국 당대의 패러다임을 반영한다는 건 오늘날 상식 아닌가? 정치적 목적에 이용된 수많은 과학의 사례들은 또 어떤가? 과학이 증오와 맹신을 증명하는 데 이용됐던 사례들을 토플러는 모르는 것일까, 잊어버린 것일까?
이러니 대체 뭐가 새로운 관점이라는 건가. 기껏해야 인간 이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던 근대 계몽주의의 재탕 아닌가. 과학이 사회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이미 19세기에 오귀스트 꽁트가 갖고있던 것이다.
5. '아니면 말고' 식의 미래 예측
미래 예측이 본질적으로 어려운 작업이라는 걸 감안해도, 토플러의 주장은 너무 무책임하다. 이를테면 유전자조작식품(GMO)이 빈곤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주장은 어떤가? 그는 근거로 황금쌀(golden rice, 유전자 조작으로 비타민A를 함유한 쌀)을 드는데, 이 프로젝트는 이미 실패했을 뿐 아니라(황금쌀을 통해 권장량의 비타민 A를 섭취하려면 하루에 수kg의 황금쌀을 먹어야 했다. '유전자변형생물체 속으로의 여행',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0월호), 공공 자금을 통해 개발됐음에도 특허 관리권은 민간 기업에 이양됐다('GMO : 논란을 넘은 성장의 역사', <담론201> 8호 2권). 어쨌든 '부'가 창출됐으니 좋은 일인 걸까?
토플러는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을 산업화 초기의 러다이트 운동과 같은 것이라고 매도하며, 첨단 기술로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애꿎은 제프리 삭스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정작 삭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첨단 기술은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향상시켰다. 하지만 과학은 시장을 이끌기도 하는 반면 그 힘에 끌려가는 경향도 있다. 부자들은 계속되는 성장 속에서 부유해지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그대로 남겨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세계의 과학 연구자들이 여전히 충족되지 않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Jeffrey Sachs, 'The End of Poverty', Time 2005년 3월 14일자, 54쪽)
그는 중국에서 종교로 인한 내전 발발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근거는 19세기 태평천국의 난이다. 자기 스스로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막 나가도 되는 건가? 그는 한반도 통일이 남한의 의지와 달리 갑자기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근거는 독일도 그랬다는 것(그리고 현대 사회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책 따윈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이래도 되는 건가? 그렇다면 난 미국과 영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하겠다. 18세기에도 그랬던 데다가, 저자의 말대로라면 유럽과 미국은 '시간적 격차'를 경험하고 있다니 말이다.
6. 한국 독자, '지적 사기'에 말려들었나
앨빈 토플러가 12년만에 냈다는 새 책에는 미래학자다운 새로운 통찰이나 예견은 거의 없다.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근대주의자이자 과학만능주의자, 미국중심주의자인 한 학자의 근거 희박한 가설 뿐이다. 나는 왜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실 <부의 미래>가 베스트 셀러에 올라있는 것은 대단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amazon.com에서 <부의 미래>(원제 : Revolutionary Wealth)의 판매순위는 12월 31일 현재 1039위에 불과하다. USA Today 집계 베스트 셀러 150위 내에도 <부의 미래>는 없다. 일본과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어 문제로 찾아보지 못했지만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사람들은 도대체 뭘 느꼈을까? yes24에는 현재 84개의 독자 리뷰가 올라와있다. 내용을 보자. 평점을 별 5개씩 매긴 사람도 리뷰엔 별 내용이 없다. 그저 어렵다..대단하다..한 번 읽고 이해할 책이 아니다..이런 글들 뿐이다. '돈 낭비 하지 말고 도서관에서 빌려보라'는 리뷰 하나가 그나마 눈에 띌 뿐이다.
이해도 잘 안 되는 책이 왜 베스트 셀러가 됐을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의 내용보다는 '앨빈 토플러'라는 저명한 학자가 쓴 6백페이지에 달하는 신간을 독파했다는 사실로 지적 만족감을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을 아무리 읽어도 '부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앨빈 토플러는 한국에서 '혁명적인 부'를 얻었으리라는 점이다.
'2006년 8월 20일 1판 1쇄 발행, 2006년 11월 25일 1판 107쇄 발행.' 내가 산 <부의 미래> 판권지에 써있는 발행 상황이다. 이 정도 추세라면 지금쯤 130쇄도 넘겼을 듯 싶다. 세상에, 이건 미친 짓이다. 얼마나 잘 팔리는지, 속표지에는 아예 '____님께, ____드림'이라고 선물용 메세지까지 인쇄돼있다. 성경 말고는 이런 책을 본 기억이 없다.
아닌 게 아니라 <부의 미래>는 12월 31일 현재 교보문고 집계 베스트셀러 종합 5위에 올라있다. 그러면 이 책은 그렇게 많이 팔린 만큼 우리에게 새롭고 유용한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는가? 안타깝지만, '미래학자'가 쓴 책이라고 하기에 이 책은 너무나도 케케묵은 이야기로 가득 차있다. 새로운 통찰이라고는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정작 이 책에 '제4의 물결'이라는 표현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진 : yes24)
장장 6백 페이지에 달하는 책이라 간단히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앨빈 토플러가 말하는 핵심 내용은 대략 이렇다. 부를 창출하는 기반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학에서 흔히 말하는 기반(fundamental)이 사실은 극히 피상적인 것들만을 반영할 뿐이라면서, 보다 근본적인 요소는 '심층기반(deep fundamental)'이라고 주장한다. 심층기반은 시간, 공간, 지식이다. 사회 변화의 가속화에 따른 시간적 속도의 변화, 부를 창출하는 공간의 변화, 지식기반경제로의 이동으로 인해 앞으로의 경제는 혁명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부는 무엇인가? 토플러는 자신이 말하는 부가 단순히 돈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부란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가 '부의 창출'을 말할 때, 이는 곧 욕망의 창출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그러니 그가 말하는 부란 사실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돈 또는 이윤을 의미한다고 봐도 큰 차이는 없다. 실제로 그는 '가난의 미덕을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대로 머물 수밖에 없다(39쪽)'고 조롱한다.
2. 심층기반 1 : 시간?
도대체 시간이 어떻게 경제와 연관된다는 말인가? 토플러는 현대 사회는 너무나 급속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 개념이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그는 "인터넷에서의 3분은 영겁에 가까운 시간이다. 사용자들은 이제 한 페이지를 다운로드하는 데 8초 이상 걸리면 사이트를 떠나버린다...(중략)...18개월마다 성능이 2배로 높아지는 반도체 칩이 더해져 모든 금융거래가 거의 즉시에 체결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외환 딜러는 5분의 1초 내에 거래를 완료할 수 있을 정도(93~94쪽)"라고 강조한다.
사회가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 현대 사회만의 특성일까? 하지만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혀를 내둘렀던 것은 오늘날의 사람들만이 아니다. 가령 약 160년 전에 쓰여진 다음과 같은 글을 보라.
"끊임없는 생산의 혁명적 발전, 모든 사회적 조건들의 부단한 교란, 항구적인 불안과 동요는 부르주아 시대와 이전의 모든 시대를 구분짓는 특징이다. 모든 고정되고 꽁꽁 얼어붙은 관계들, 이와 더불어 고색창연한 편견과 견해들은 사라지고, 새로이 형성된 모든 것들은 골격을 갖추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버린다. 딱딱한 것은 모두 녹아 사라지고, 거룩한 것은 모두 더럽혀지며, 마침내 인간은 냉정을 되찾고 자신의 실제 생활 조건, 자신과 인류의 관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마르크스 & 엥겔스, 공산당선언)"
자본주의 체제의 형성기를 살았던 당시 유럽인들이 느꼈던 변화는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미미했을까? 근대 문물이 수입되는 것을 바라보던 19세기 말의 조선인들이 느꼈던 변화의 속도는 오늘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작았을까? 토플러 씨, 엄살부리지 마세요.
그는 산업 시대의 '9 to 5' 체제가 무너지고 노동시간과 상점의 서비스 시간이 유연화되면서 새로운 부를 창출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기 출근에서 야근으로 이어지는 '유연한' 노동시간과, 새벽까지 불을 밝히는 편의점과 분식집, 유흥업소는 오늘날 한국에서 일상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부를 창출했나? 우리의 삶의 질은 얼마나 높아졌나?
그는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프리랜서가 늘어나 전통적 노동조합이 위협받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의 노동 시간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전통적 업무시간 개념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프리랜서들은 '유급휴가, 의료보험, 퇴직금 등을 어떤 경우에도 누릴 수 없으며, 시간당 최대임금은 3.6달러로 추정('인터넷을 통한 헐값의 재택근무',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창간준비3호 12면)'된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도대체 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3. 심층기반 2 : 공간?
그렇다면 공간은 어떻게 부와 연결될까. 부의 창출 시스템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공간의 변화라며 제시되는 게 고작 이거다.
"역사상 대대적인 부의 지리적 이동이 전개되고 부의 지리적인 판도가 전에 없이 바뀌고 있다...(중략)...19세기 말, 부 창출의 세계 중심은 서쪽의 미국으로 향했다...(중략)...그러나 아시아를 향한 부의 이동은 처음에는 일본으로, 그 후에는 한국과 같은 신흥 공업국으로 조금씩 움직이며 수십 년간 힘을 비축해왔다.(105~106쪽)"
뭔가 이게? 문명서진론 아닌가? 십수 년도 더 묵은, 그것도 자기 이론도 아닌 얘기를 끌어들여 새로운 것인 양 얘기하는 건 반칙이다.
그는 민족국가의 경계를 벗어난 새로운 공간의 창출 가능성을 전망한다. 전망 자체는 일리가 있지만 근거가 영 부실하다. 미국 남부와 멕시코 북부의 경제 통합을 말하고 있는데, 부시 행정부 들어 미국-멕시코 국경에는 만리장성이 쌓인 상태다. 10년째 지지부진한 '두만강 삼각지대 개발계획'을 언급하는 데에는 눈물이 날 지경이다. 토플러 씨, 공부는 하고 있는 건가요?
4. 심층기반 3 : 지식?
그래도 지식과 부의 관계에서는 명쾌한 정리가 나오지 않을까? '제3의 물결'과 '지식기반경제론'은 토플러가 원조이니 말이다. 이런 기대를 갖고 책장을 넘기는 독자는 참신한 예견 대신 식상한 과학만능주의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무용지식(obsoledge, obsolete과 knowledge의 합성어)'이라는 개념을 창안해 냈다. 급속하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오늘의 지식은 내일이 되면 쓸모없는 것들이 돼버린다는 뜻이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무용지식의 축적 속도도 빨라진다.
하지만 어떤 지식이 '무용'한 지식인지 대체 누가 판단하는가? 누구나 과거에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지운 파일을 나중에 복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유용한 지식만이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를테면 '역사적 지식'은 무용한가? 그럴 수도 있겠다. '부를 창출'하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무용지식을 비롯해 넘쳐나는 정보 중에서 진실을 가려낼 필요성은 커진다. 토플러는 그 방법을 6가지로 분류한다. 합의, 일관성, 권위, 계시, 내구성(역사성/전통), 과학이다. 토플러는 이 중 과학만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은 혹독한 시험을 거쳐 진실을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며, 어떤 종류의 맹신에 대해서도 천성적으로 반대하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 이 얼마나 케케묵은 관점인가! 과학적 실재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구성된다는 극단적인 사회구성주의는 거부한다 해도, 과학적 지식의 승인은 과학자 사회의 합의에 의하며 그것은 결국 당대의 패러다임을 반영한다는 건 오늘날 상식 아닌가? 정치적 목적에 이용된 수많은 과학의 사례들은 또 어떤가? 과학이 증오와 맹신을 증명하는 데 이용됐던 사례들을 토플러는 모르는 것일까, 잊어버린 것일까?
이러니 대체 뭐가 새로운 관점이라는 건가. 기껏해야 인간 이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던 근대 계몽주의의 재탕 아닌가. 과학이 사회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이미 19세기에 오귀스트 꽁트가 갖고있던 것이다.
5. '아니면 말고' 식의 미래 예측
미래 예측이 본질적으로 어려운 작업이라는 걸 감안해도, 토플러의 주장은 너무 무책임하다. 이를테면 유전자조작식품(GMO)이 빈곤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주장은 어떤가? 그는 근거로 황금쌀(golden rice, 유전자 조작으로 비타민A를 함유한 쌀)을 드는데, 이 프로젝트는 이미 실패했을 뿐 아니라(황금쌀을 통해 권장량의 비타민 A를 섭취하려면 하루에 수kg의 황금쌀을 먹어야 했다. '유전자변형생물체 속으로의 여행',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10월호), 공공 자금을 통해 개발됐음에도 특허 관리권은 민간 기업에 이양됐다('GMO : 논란을 넘은 성장의 역사', <담론201> 8호 2권). 어쨌든 '부'가 창출됐으니 좋은 일인 걸까?
토플러는 유전자 조작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을 산업화 초기의 러다이트 운동과 같은 것이라고 매도하며, 첨단 기술로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애꿎은 제프리 삭스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정작 삭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첨단 기술은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향상시켰다. 하지만 과학은 시장을 이끌기도 하는 반면 그 힘에 끌려가는 경향도 있다. 부자들은 계속되는 성장 속에서 부유해지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그대로 남겨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세계의 과학 연구자들이 여전히 충족되지 않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Jeffrey Sachs, 'The End of Poverty', Time 2005년 3월 14일자, 54쪽)
그는 중국에서 종교로 인한 내전 발발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근거는 19세기 태평천국의 난이다. 자기 스스로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막 나가도 되는 건가? 그는 한반도 통일이 남한의 의지와 달리 갑자기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근거는 독일도 그랬다는 것(그리고 현대 사회는 급격히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대책 따윈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이래도 되는 건가? 그렇다면 난 미국과 영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하겠다. 18세기에도 그랬던 데다가, 저자의 말대로라면 유럽과 미국은 '시간적 격차'를 경험하고 있다니 말이다.
6. 한국 독자, '지적 사기'에 말려들었나
앨빈 토플러가 12년만에 냈다는 새 책에는 미래학자다운 새로운 통찰이나 예견은 거의 없다.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근대주의자이자 과학만능주의자, 미국중심주의자인 한 학자의 근거 희박한 가설 뿐이다. 나는 왜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실 <부의 미래>가 베스트 셀러에 올라있는 것은 대단히 한국적인 현상이다. amazon.com에서 <부의 미래>(원제 : Revolutionary Wealth)의 판매순위는 12월 31일 현재 1039위에 불과하다. USA Today 집계 베스트 셀러 150위 내에도 <부의 미래>는 없다. 일본과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언어 문제로 찾아보지 못했지만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일 듯하다.
사람들은 도대체 뭘 느꼈을까? yes24에는 현재 84개의 독자 리뷰가 올라와있다. 내용을 보자. 평점을 별 5개씩 매긴 사람도 리뷰엔 별 내용이 없다. 그저 어렵다..대단하다..한 번 읽고 이해할 책이 아니다..이런 글들 뿐이다. '돈 낭비 하지 말고 도서관에서 빌려보라'는 리뷰 하나가 그나마 눈에 띌 뿐이다.
이해도 잘 안 되는 책이 왜 베스트 셀러가 됐을까. 사람들은 어쩌면 책의 내용보다는 '앨빈 토플러'라는 저명한 학자가 쓴 6백페이지에 달하는 신간을 독파했다는 사실로 지적 만족감을 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책을 아무리 읽어도 '부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앨빈 토플러는 한국에서 '혁명적인 부'를 얻었으리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