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야기

선진화 비판(1) - 자유 경쟁 교육의 허상

술이부작 2011. 8. 30. 21:38
(2008년 1월 22일에 썼던 글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국가 비전이 선진화라고 한다. 인수위는 차기 정부의 국정 목표는 '신발전체제', 국정 철학은 '화합적 자유주의'라고 밝혔다(<한겨레>, 1월 14일). 이는 각각 한반도 선진화 재단이 제시한 신 발전패러다임, 공동체 자유주의에 대응한다. 이명박 정권의 정책은 선진화 재단의 구상을 상당부분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읽어봤다. 박세일 교수의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 내용을 살펴보니 걱정이 많다. 반공을 빼면 아무 것도 안 남는 극우파들보다야 낫지만, 이들이 그리는 '선진화된 대한민국'에서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자유 경쟁 교육? 입시 경쟁의 효율성만 높아질 것

'선진화 5대 핵심 전략'의 첫 번째는 교육으로 시작한다. 정보화 시대, 지식경제 시대라니 당연한 선택이겠다. 게다가 교육을 통해 소득분배를 개선하고 국민 복지를 높일 수 있다니 인식 자체는 올바르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내놓는 처방은 '교육의 경쟁 확대'이다. 경쟁을 통해 효율을 높여 세계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p. 234). 물론 경쟁을 확대하면 효율은 높아질 수 있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경쟁이냐는 것이다. 경쟁의 내용은 인센티브의 형태에 따라 결정된다. 한국 사회에서 수 조원의 사교육비를 투입해가며 이뤄지는 교육 경쟁의 본질은 명문 대학 진학이다. 공교육을 경쟁 체제로 재편하면 학교들은 다투어 입시 교육에 치중할 것이 분명하다. 설마 입시위주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선진화'일까?

놀랍게도 박세일 교수도 이 점을 모르는 게 아니다.

자유경쟁에만 맡기면 입시경쟁이나 취업 위주의 교육에만 매몰되어... 인간화 기초교육에 소홀할 수 있다.(p. 252)

그러면서 인성교육, 민주 소양 교육, 세계시민 교육에 투자와 지원이 있어야 한다지만, 입시에 당장 도움이 안 되는 이런 교육 내용이 어떤 취급을 받을지는 오늘날 '기타 과목'의 운영 실태만 보아도 명확한 일이다. 더구나 학교 운영과 교육 내용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무슨 수로 일선에서 인성교육이 이뤄지도록 지도할 것인가?

고교 평준화에 대한 공격은 우파들의 단골 메뉴다. 평준화로 경쟁이 차단돼 교육의 질이 높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p. 237). 평준화만 없으면 교육이 확 달라질 것처럼 말한다. 이건 사기다. 지금도 비평준화 지역이 있다. 그들 지역의 교육 여건과 성취도는 평준화 지역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말뿐인 학교 선택권, 저소득층은 저학력으로 내몰린다

이렇게 말하면 아직 학교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 진정한 경쟁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니 자립형 사립고, 특성화 학교 등 다양한 학교를 설립해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 학교에 진학하려면 상당한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지금의 자립형 사립고 운영 실태로 알 수 있다. '글로벌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며 교육 개방까지 말하는데, 외국 교육기관이 한국에 진입하는 것은 '한국인들을 글로벌 인재로 키워야겠다'는 거룩한 뜻 때문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사교육 시장의 자금을 흡수해 돈을 벌려 할 것이고, 이는 입시 경쟁과 학비 상승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이 문제를 박세일 교수는 어떻게 풀려고 하는가?

중/고소득층의 교육 문제는 자유화를 통하여 풀어, 얼마든지 좋고 비싼 학교, 얼마든지 좋고 비싼 교육프로그램을 마음껏 자유롭게 개발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저소득층의 교육 문제는 교육 바우처 프로그램으로 풀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저소득층 자녀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재학하고 있는 실업계 고교, 직업훈련기관, 전문대학 등의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부투자를 확대하면 교육형평성 제고에도 큰 기여가 될 것이다.(p. 247)

그러니까 다시 얘기하면 권력과 부를 거머쥘 수 있는 '양질의' 교육은 돈 있는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서민들은 출세할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고 자기 분수에 맞게 살라는 이야기다. 이런 체제가 정착되면 교육은 지금의 계층 구조를 유지,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물론 교육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가는 토론할 수 있다. 현재의 사교육 광풍은 근본적으로 너무 많은 한국인들이 너무 강한 신분 상승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때, 그 욕망을 억제하는 것은 학력 경쟁을 완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저소득층이 계층 상승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도 가치판단을 유보한다면 '합리적인' 대안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하면서 버젓이 '교육에 의한 불평등 세습은 막아야 한다(p. 245)'고 말하는 뻔뻔함은 용납될 수 없다.

원래는 한 편의 글로 끝낼 생각이었는데, <선진화 전략>에 위험스런 부분이 너무 많아서 길어지게 생겼다. 나머지 부분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적는 게 좋겠다. 앞으로 경제와 외교 부분에 대한 분석을 담고, 끝으로 총평을 올려보려 한다. 토론과 보완, 오류 지적도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