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이야기
일본이 보는 한국(3) - '작은' 한반도?
술이부작
2011. 8. 29. 21:18
(2005년 2월 7일에 썼던 글입니다.)
일본이 보는 한국
※ 이 글은 기무라 칸(木村幹)의 <한반도를 어떻게 볼까朝鮮半島をどう見るか>를 요약한 것입니다. 본문중의 '조선반도', '북조선', '일한', '일조'는 각각 '한반도', '북한', '한일', '북일'로 옮겼으며, '조선', '조선인'은 1945년 이전을 지칭할 경우는 그대로 '조선', '조선인', 그 이후일 경우는 경우에 따라 한국, 한반도, 한국인 등으로 옮겼습니다.
저는 일본내 사정에 정통하지 못하며, 이 책은 일본 내 한국 논의를 대표하는 책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탈고정관념'을 표방하는 저자가 제시하는 '제3의 시각'이 무엇인지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다른 의견이나 보충 설명 등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꺼리지 않고 달아주시면 모두에게 대단히 유익한 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3. 제3연습 - '작은' 한반도?
- 한반도의 크기
자, 그러면 한반도를 있는 그대로 살펴보자. 어떻게 할까?
에,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해야 할지 감이 안잡힙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있는 반도라는 정도인가요. 좀 더 힌트를 주십시오.
조금 짖궂은 질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같이, 사물을 아무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생각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사실, 우리는 일정한 전제와 개념 없이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이전의 논의에서 벗어나 완전히 자유롭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여러 고정관념을 배제하기 위해 가능한 한 단순한 사실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먼저 간단한 지도와 기본적 자료, 연표가 있으면 충분하다.
'전문가'가 쓴 두껍고 값비싼 책은 우선 덮어두자. '전문가'는 당신을 설득하려 한다. 그런 설명에 기대지 말고, 종래의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한반도에 대한 자기 자신의 시각을 확립하는 것에서 시작하자.
그러면 한반도는 어떤 곳일까? 도표를 보자.
남북한 기초 자료
|
면적(㎢) |
인구(만 명) |
GDP(백만$) |
군사비(백만$) |
병력수(만 명) |
북한 |
120.5 |
2,222 |
22,000 |
5,124 |
108.2 |
남한 |
98.5 |
4,832 |
931,000 |
12,800 |
68.3 |
한반도 전체 |
219.0 |
7,055 |
953,000 |
17,924 |
176.5 |
이렇게 숫자만 봐서야 어떤 나라인지 알 수 있을리가 없다. 이런 자료는 그것만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자료와 비교해야 의미가 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먼저 '확인하고 싶은' 것을 결정해두는 것이 좋다.
그런데 앞서 '그'는, 한반도를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있는 반도'라고 말했다. 이럴때 통상 그려지는 것은,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 위치때문에 중국, 일본 등의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히는 지역으로서, 끊임없이 취약한 입장에 놓여왔다'(아사히 신문, 2000.5.30)와 같은 것이다. 그 배경에는, 작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국제사회에서 약한 입장에 놓여있다는 인식이 있다.
이런 인식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 대표가] 이렇게 강하다고는 생각 못했다. 김치와 마늘의 코리안 파워가 작은나라를 세계 무대에 올려놨다.(마이니치 신문, 2002.6.23, 강조는 원저자)
흥미롭게도, 작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국제사회의 변동 속에서 약한 입장에 놓인 '가엾은' 존재라는 막연한 인식은, 오늘날 '부정적' '긍정적' 양측의 시각에 모두 존재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부정적>
반도의 소국은 본토인 중국 이상으로 중국화하여, 전제체제의 막다른 경직성을 자연스럽게 바꾸어가는 유연성이 체제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다.(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국민의 역사>)
<긍정적>
반도란 신비한 존재이다. 바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대륙에도 연결되어 있다. 그로 인한 재앙도 행운도. 여러 물결을 반도는 되풀이해 받지 않을 수 없다. 양쪽으로부터 자주 침공당해온 한반도의 경우는 재앙의 편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아사히 신문, 2003.2.26)
그러면 한반도는 정말로 세계속의 '작은' 존재인 것일까. 먼저 간단한 퀴즈를 내보겠다.
1. 한반도 남부 '한국'의 면적은 큐슈의 면적과 비교해 얼마나 될까? '한국은 큐슈의 몇 배이다'라는 형태로 나타내보자.
2. 한반도, 일본 전체, 혼슈, 그레이트 브리튼 섬(영국 본토)을 크기순으로 나열해보자.
답은 위의 표에서 금방 나온다. 큐슈는 약 36,700㎢, 한국은 98,500㎢니까 큐슈의 약 2.7배이다. 2번 문제는, 일본 전체의 면적이 377,900㎢, 혼슈는 227,900㎢, 영국 본토가 216,800㎢, 한반도 전체가 219,000㎢니까 일본 전체와 혼슈에 이어 한반도는 세 번째가 된다.
많은 일본인은 한반도나 그 나라에 대해 실제보다 작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 경험으로는, 1번에 대해 1.5배 이하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았다. 2번도 역시, 한반도가 영국보다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하지만 한반도는 일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물론 면적이 그 나라의 국제적 영향력을 생각하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라를 이루는 것은 사람이지 토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국제적 '크기'를 생각하는 데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인구와 경제규모일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가 작게 느껴지는 것은 인구와 경제규모가 작기 때문일까? 답은 분명코 '아니오'이다.
나라별 인구 순위(단위: 만 명)
1. 중국 128,430
2. 인도 104,585
3. 미국 28,056
4. 인도네시아 23,133
5. 브라질 17,603
6. 파키스탄 14,766
7. 러시아 14,498
8. 방글라데시 13,338
9. 나이지리아 12,993
10. 일본 12,697
11. 멕시코 10,340
12. 필리핀 8,453
13. 독일 8,325
14. 베트남 8,110 |
15. 이집트 7,071
* 한반도 전체 7,055
16. 이디오피아 6,767
17. 터키 6,731
18. 이란 6,662
19. 타이 6,235
20. 영국 5,978
21. 프랑스 5,977
22. 이탈리아 5,772
23. 콩고민주공화국 5,523
24. 우크라이나 4,840
25. 한국 4,832
......
49 북한 2,222 |
한반도에는 남북한을 합쳐 약 7천만명(2002년 현재)이 살고있다. 7천만명은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독일에 육박하고, 영국이나 프랑스를 훨씬 뛰어넘는다. 4,832만이라는 한국 단독의 인구규모도 오스트레일리아의 2.5배에 가깝고 캐나다의 약 1.5배, 유럽에서도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4대국 다음인 것이다. 2,222만이라는 북한 인구도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라크(2,400만)와 거의 같고, 중동과 남미의 강국 시리아(1,716만)와 칠레(1,550만)의 1.3~1.4배 정도이다. 한반도의 두 나라 인구가 국제사회의 영향력 있는 나라들에 뒤지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나라별 GDP순위(단위: 백만 달러)
1. 미국 10,082,000
2. 중국 6,000,000
3. 일본 3,550,000
4. 인도 2,660,000
5. 독일 2,184,000
6. 프랑스 1,540,000
7. 영국 1,520,000
8. 이탈리아 1,438,000
9. 브라질 1,340,000 |
10. 러시아 1,270,000
11. 한국 931,000
12. 캐나다 923,000
13. 멕시코 920,000
14. 스페인 828,000
15. 인도네시아 687,000
......
......
96. 북한 22,000 |
경제적 면에서도 한반도, 특히 한국의 '크기'는 현저해졌다. 한국의 GDP는 2002년 현재 세계 11위이다. 11위라고 해도 감이 잡히지 않으면, 이런 얘기를 들으면 실감이 날지 모르겠다.
세계에는 '주요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가 7개 있다. 소위 G7으로,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이다. 그리고 지금은 나라 전체의 경제규모를 얘기하고 있으므로 엄청나게 인구가 많다면 (경제가 그 정도로 발달하지는 않은 나라라도) G7과 동등한, 혹은 그 이상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가 있을 수 있다.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가 그 예이다. 이들은 세계의, 혹은 지역내의 쟁쟁한 '대국'이다.
이걸로 벌써 11개국이다. 그런데도 한국이 11위에 들었다는 것은, 한국의 경제규모가 이들과 동등한 레벨에 이르렀다는 의미이다. 사실 G7의 하나인 캐나다는 한국 바로 뒤에 있다.
군사력도 물론 중요하다. 군사력이라면 한국은 물론 북한도 세계 유수의 '군사대국'이다. 양국의 군대는 적어도 그 규모로는 각각 세계 6위와 4위에 위치하며 일본과 독일을 훨씬 능가한다. 군사비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군사비는 세계 상위 10위에 든다.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북한조차 세계 21위의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한반도의 두 나라는 흔히 생각하듯 국제사회의 영향력 없는 '소국'따위가 결코 아니다. 확실히 그들은 미국이나 중국같은 세계 '초거대 국가'에 비하면 작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크기'는 적어도 독일이나 영국 등 유럽 유력 국가와 비교해 손색이 없고, 어느 면에서는 오히려 그들을 능가한다.
우리는 한반도에 관해서는 이런 간단한 자료로 알 수 있는 것조자 '보지 못하게' 되었다. 바로 그렇기에, 흔한 고정관념에 의지하지 않고 한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자료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 역사관이 바뀐다
한반도가 저희 생각보다 '커다란' 존재라는 건 알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한반도와 그 두 나라는 국제사회의 '작은' 존재가 결코 아니다. 이것만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한반도에 대한 시각이 크게 변한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을 읽은 기억은 없는가?
이런 상태를 맞아, 일단 해산한 동학 농민군은 다시 일어섰다...(중략)...그러나 근대적인 장비와 훈련을 갖춘 일본군에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또 한반도의 까다로운 '과거' 이야기인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잠시 참고 살펴보자. 여기서 보이는 것은 '한반도의 사람들은 용감하게 침략에 맞서 일어섰지만, 그 저항은 열강의 강대한 힘에 의해 진압되었다'라는, 한반도 근대사에 관한 '판에 박힌' 설명이다. 실제로 이런 문장은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조선사 관련 서적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판에 박힌' 설명 배후에 있는 것은, '<작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이 열강의 <강대한> 힘에 저항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려워고, 따라서 그들의 노력과 침략에 대한 저항이 실패로 끝난 것은 어쩔 수 없었다'라는 막연한 이해이다.
그리고 '부정적 시각'을 가진 자는 여기서 '그러니까 한반도는 차지하기에도 부족한 존재인 거다'라고 결론내린다. 역으로 '긍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그런 상황에 처한 그들을 한동안 위로한 뒤, 그럼에도 '용감히' 일어선 사람들을 예찬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는 결코 세계적으로 '작은' 존재가 아니다. 즉 '<작은> 한반도 사람들이 열강에 패한 것도 어쩔 수 없는 거다'라는 '판에 박힌' 조선사 이해에는 어딘가 틀린 데가 있다.
이런 반론을 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오늘날의 한반도, 특히 한국은 <소국>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경제발전 이전의 조선은 역시 무력한 존재였던 것 아닌가?' 이런 사람을 위해 표를 준비했다. 2차대전 이전의 주요 식민지 인구를 비교한 것이다.
1935년경의 인구 500만 이상 식민지(단위: 천 명)
지역명(종주국) |
인구(조사년도) |
영국령 인도(영국)
네덜란드령 인도(네덜란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프랑스)
조선(일본)
나이지리아(영국)
필리핀(미국)
버마(영국)
프랑스령 서아프리카(프랑스)
벨기에령 콩고(벨기에)
알제리(프랑스)
모로코(프랑스)
실론(영국)
탄자니아(영국)
대만(일본) |
338,119(1931년)
65,420(1935년)
23,000(1936년경)
22,899(1935년)
20,191(1936년)
15,984(1938년)
15,360(1937년)
14,550(1936년경)
9,301(1935년)
7,235(1936년경)
6,295(1936년경)
5,785(1937년)
5,387(1936년)
5,212(1935년) |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은 사실 당시의 세계에서도 많은 인구를 가진 '거대한' 식민지였고, 만일 조선에 종주국(그러나 그것은 열강중에서는 별로 강대하다고 할 수 없는 당시의 일본이었다)에 대한 저항력이 없었다고 하면, 세계에서 열강에 대한 저항력을 가진 식민지는 세계 최대의 식민지 영국령 인도(현재의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와 네덜란드령 인도(현재의 인도네시아) 정도밖에 없다.
그 뒤 각 식민지의 동향을 보면, 조선보다도 인구가 적은 식민지가 일본보다 훨씬 강대한 종주국에 과감히 도전, 독립을 실현한 예가 많이 있다. 일본 지배기의 조선은 작고 무력해서 저항이 불가능했다는 설명에는 무리가 있다.
일본과 한반도의 근대사를 비교해도 그렇다. 확실히 일본은 한반도보다 국토가 크고, 에도시대의 일본은 조선왕조 말기의 조선보다 경제적으로 발달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양국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것은 아니다.
조선보다 크고 발전했다는 일본이 '단 4척의 증기선' 앞에 국시를 바꾸고 개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듯이, 당시의 서양 열강과 일본, 조선의 국력차는 조선과 일본의 차이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결정적이었다. 심지어 일본보다 훨씬 컸던 중국조차 1839, 1842년 두 차례 아편전쟁에서 간단히 패했다. 동아시아의 '미개한' 나라간의 다소간 국력차이는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당시 서양 열강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오히려 당시 동아시아 상황은 이런 형태로 생각해야 한다.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 끝에, 조선과 일본이라는 비슷한 정도로 심각하게 미개한 두 나라가 있다. 둘 다 군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서양 열강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뒤쳐졌고, 그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보였다. 하지만 양자의 운명은 나뉘어졌다. 문제는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반도는 사실은 크다'라고 지적하는 것만은 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시점을 가지고 이제까지의 고정관념을 검증하고, 틀린 점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 자기 자신의 이해를 구축한다
그래도 그건 여태까지의 설명은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 뿐이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지금 화제에 오른 조선의 근대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의 말은 타당하다. 그저 옛 관념을 무너뜨리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새로운 무언가를 또 한번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의 세계에서 한반도가 사라질리가 없다면, 한반도의 두 나라와 사람들과 마주칠 필요가 없어질리도 없다. 우리에게는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대신할만한 것이 없다면 별 수 없이 '깨뜨린 고정관념'에 계속 의지할 수밖에 없다. '깨뜨린' 부분에 새로운 설명과 이해를 어떻게 쌓아올릴까, 이것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어쨌든, 일본과 한반도의 근대사를 조금 상세히 살펴보자.
일본과 조선이 서양 열강에 대한 '개국'을 강요당할 때, 아시아는 서양보다 훨씬 뒤쳐진 지역에 불과했다. 일찌기 두 번에 걸쳐 빈을 포위했던 오스만 투르크도, 인도를 통일하고 찬란한 황금시대를 열었던 무굴제국도, 몽골 제국을 제외하면 중화제국에서 최대의 판도를 자랑했던 청나라도 서양 열강 앞에, 그것도 어이없이 패배했다. 아시아 각국과 서양 열강의 힘의 차이는 엄연히 있었고, 그 상황을 방치하면 식민화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일본은 여기서 '근대화'에 착수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역사의 뒤에 태어난 덕에 일본의 '근대화'가 성공한 것을 알고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공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의 일본인과 조선인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과 서양 열강 사이의 격차는 매우 컸고, 그들보다 먼저 '근대화'를 이룬 비서양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방법도 성공 여부도 정해지지 않았고, 실현까지의 길은 아득히 멀었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근대화'에 착수하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어려움을 생각하면, 달리 자기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편이 훨씬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 '당연한' 길을 걸은 것이 조선이었다. 당시 조선인의 길잡이가 된 것은 중국이었다.
- 저 강대한 중국조차 서양 열강에 간단히 패했다. 중국은 그 후로 여러가지 만회하기 위한 시행착오를 하고 있지만, 어느 것도 그다지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혼란을 향해 가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조차 서양 열강에 대항하고 그들을 배워 개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중국보다 훨씬 작은 조선에서 가능할리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무모한 개혁에 착수하는 것보다, 국내를 안정시키고 외교의 술책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 중국은 멸망의 위기에 처해있다. 일본도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그들처럼 돼버린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확 벗어던지고 개혁에 착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배경에 있는 것은 양국의 중국에 대한 생각과 당시 국제사회 내 자국의 위치에 대한 이해의 차이이다. 조선의 지식인은 자신의 나라를 '대국' 중국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소국'이라고 생각해왔다. 그 결과, 그들은 중국에 불가능한 것이 조선에 가능할리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막부 말기의 일본인은 자기 나라를 중국과 동격의 존재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은 중국의 패배를 일본의 필연적 패배가 아닌 단순한 개혁의 실패 사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일본인과 달리, 그리고 일본인 이상으로, 한반도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소국'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현재도 큰 변화가 없다. 그런 독특한 자국인식을 이해하지 않으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한반도는 세계 속에서 작은 존재가 아니고, 특별히 약한 입장에 처해있는 것도 아니다 - 이 관점은 작은 돌파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은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우리가 자기 머리로 한반도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문을 열면, 거기에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한반도의 모습이 펼쳐질 것이다.
* 저는 조선의 식민지화에 대한 저자의 분석에는 대단히 비판적입니다. 자세한 글은 다음에 쓰겠습니다. 아울러, 이 글이 자칫 맹목적 애국주의를 부추기는 데 사용되는 것을 경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