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이야기

일본이 보는 한국(7) - 북한을 생각한다

술이부작 2011. 8. 29. 21:23

(2005년 2월 21일에 썼던 글입니다.)

일본이 보는 한국
 
※ 이 글은 기무라 칸(木村幹)의 <한반도를 어떻게 볼까朝鮮半島をどう見るか>를 요약한 것입니다. 본문중의 '조선반도', '북조선', '일한', '일조'는 각각 '한반도', '북한', '한일', '북일'로 옮겼으며, '조선', '조선인'은 1945년 이전을 지칭할 경우는 그대로 '조선', '조선인', 그 이후일 경우는 경우에 따라 한국, 한반도, 한국인 등으로 옮겼습니다.
 
2004년 5월에 발매된 이 책은 일본내 한류 열풍으로 인해 변한 상황을 담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일본이 가졌던 과거의 인식은 현재에도 어느정도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탈고정관념'을 표방하는 저자가 제시하는 '제3의 시각'이 무엇인가 정도로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다른 의견이나 보충 설명 등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꺼리지 않고 달아주시면 모두에게 대단히 유익한 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7. 제7연습 - 북한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면 이제까지 사용한 방법 - 즉 '기본적 자료 확인', '논의의 논리구조 확인', '상식에 대한 도전', '역사적 경위 확인'의 방법을 사용해서 북한에 대해 생각해보자.
 
- 북한의 경제상태 : 단순한 자료에서
 
북한은 어쨌든 특이한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를 자료를 써서 분석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가능한 한 알기 쉬운 숫자로 시작해보자. 인구와 면적은 보았으니, 경제를 보자. 북한 관련 자료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꽤 있지만, 비교적 신뢰 가능한 기관의 추정치를 살펴보자.
 
아래 표를 보자. 최근 심각한 식량난으로 유명한 북한이지만, 세계에는 북한과 같은, 혹은 그보다 더 가난한 나라가 많이 존재한다.
 
아시아 각국 1인당 국민소득과 세계 순위
일본 35, 610(달러) 5위
한국 9,460 54위
중국 890 138위
인도네시아 690 145위
인도 460 162위
베트남 410 165위
네팔 250 190위
북한 745 이하 143위 이하
 
물론 식량부족은 낮은 경제수준 외에도 농업의 부진이나 외화 부족으로 인한 식량수입 중단, 유통과정의 결함 등의 원인도 있으므로 경제 수준이 같으면 기아 수준도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계에서는 여전히 '매일 2만 4천 명이 굶어죽고, 8억 4천만 명이 영양부족 상태에 놓여있다(2003년 10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그런 세계 전체의 상황에서 볼 때, 북한이 처한 경제적 상황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는 기아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유감이지만 이 세계에서 기아는 흔한 현상이라는 얘기다.
 
아래 표도 보자.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과 경제성장률(추계)
1인당 국민소득(달러) 경제성장률(%)
1990년 1,142 -3.7
1991년 1,115 -3.5
1992년 1,013 -6.0
1993년 969 -4.2
1994년 992 -2.1
1995년 1,034 -4.1
1996년 989 -3.6
1997년 811 -6.3
1998년 573 -1.1
1999년 714 6.2
2000년 757 1.3
2001년 706 3.7
2002년 762 1.2
(한국은행 추계, 성장률은 원화 기준으로 계산하여, 달러 기준 성장률 변화와는 일치하지 않음)
 
북한은 경제적 곤경에 처해있다. 그러나 북한 정부와 주민들에게 이런 상태는 이미 오래 계속되어온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많은 탈북자가 회상하듯이 북한 경제가 최악의 상태였던 것은 97~98년이고, 그 후 경제는 오히려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경제적 고난을 겪고있다. 때문에 현재 중국 동북지역에는 1만이라고도 30만이라고도 하는 '탈북자'들이 있다. 확실히 북한 사람들이 매우 불행한 상황에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 때문에 곧바로 북한의 사례가 세계에서 특히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류이다. '탈북자(그 중에는 북한과 중국을 빈번히 오가는 일시작 탈출자도 있다)'의 수도, 2200만을 넘는 북한 인구를 생각하면 최소한 지금으로서는 엄청나게 많다고는 할 수 없다. 게다가 이런 상태는 사회주의권 붕괴로부터 계산하면 14년 이상, 97년의 경제위기부터 계산해도 6년 이상 계속되었다.
 
이런 경제상태와 '탈북자'수만 갖고 말한다면, 현재의 북한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파산 직전의 국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수많은 최빈국'중 하나라고 말하는 게 적절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사는 지역 바로 가까이에 있고, 북한 경제문제가 납치 문제나 핵무기 문제와 밀접히 관련돼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물론 한국과 대만, 중국도 경제성장을 거두고 있는 지금, 북한의 상황은 특이해보인다. 하지만 예전에는 우리 자신도 빈곤했고, 지금도 세계에는 북한같은 경제상태의 나라가 많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북한과 주변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
 
- 기아는 나라를 붕괴시킬까? : 북한론의 전제를 의심한다
 
그렇지만 북한은 경제가 곤란하니까 '핵 카드'를 쓰고 납치를 시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고서는 최근 북한의 동향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북한 경제는 파산 직전이며 이대로라면 북한은 붕괴한다. 그래서 김정일은 초조하여 핵을 꺼내들거나 납치문제를 이용해 일본에게서 원조를 받으려는 것이다 - 2002년 9월 북일정상회담 이후 우리 주변에는 이런 논의가 빈번하다. 그리고 여기서 논의는 두 가지로 나뉜다.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은 '이 기회에 북한에 압력을 가해 체제를 무너뜨리자'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긍정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우호관계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사람은 '북한의 붕괴는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악몽이고, 적극적 원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거기에는 한반도에 대한 종래의 '부정적' '긍정적' 시각이 짙게 반영되어있다.
 
이런 주장은 각각 나름의 설득력이 있고, 거울에 비친듯 정반대로 보이지만 뭔가 위험한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경제가 파산 직전인 북한은 체제 붕괴의 위기에 처해있다'는 인식은 올바른 것인가?
 
이미 보았듯이, 북한처럼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나라는 세계에 많이 있다. 만일 경제위기가 반드시 체제 붕괴를 가져온다면, 이들 나라는 먼 옛날에 무너졌어야 마땅하다.
 
경제위기가 있으면 사람들은 정부에 불만을 갖고 그것을 타도한다 - 이런 생각에는 우리 자신이 지니는 풍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의 편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북한의 일부 '탈북자'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사람은 실제로 심각한 기아에 직면했을 때 수도의 대광장으로 나와서 반정부 데모를 하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성공가능성조차 희박한 정치적 도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에 들어가 식량을 모으거나 국경을 넘어 불법으로라도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폴 포트 정권의 캄보디아나 대약진운동 시기 중국 등을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북한의 경제위기는 외교공세가 시작된 2002년보다 훨씬 전에 시작된 것도 기억해야 한다.
 
정말 북한이 경제위기의 결과로 체제붕괴의 위협을 받고있고 지금 당장 경제원조를 원한다면, 일부러 핵문제를 꺼내들어 제네바 합의를 붕괴시키고 중유 제공 동결을 초래하지는 않앗을 것이다. 납치 문제에 있어서도, 납치 피해자 가족을 일본에 돌려보낸 것으로 북한이 실제로 잃은 것은 없다. 정말로 일본의 경제원조를 원한다면 먼저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다.
 
북한이 취한 일련의 움직임은 국제사회의 원조를 얻기보다는, 오히려 국제 여론을 경색시켜 각국의 원조를 곤란하게 할 뿐이다. 일부에서 말하듯 2002년 7월의 경제개혁이 실패하고 경제난이 심화됐다고 해도, 그들이 경제적 이유으로 이런 외교교섭을 추진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북한의 최근 움직임은 그들 자신이 명확히 표현하고 있듯이, 미국으로부터 강한 군사적, 정치적 압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만일 북한이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 압력에서 벗어나려면 대개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미국의 정책을 전환시키는 것이고, 그래서 북한은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 체결을 원한다. 다른 하나는 미국의 압력에 버틸만한 실력을 키우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강한 군사력이 필요하다.
 
핵개발 문제의 제기는 이 양쪽을 주목한 북한의 합리적이고 교묘한 전략이다. 핵개발에서 미국이 양보하고 북한과 일종의 조약을 체결하면 북한은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미국이 양보하지 않으면 북한은 실제로 핵을 배치하고 미국과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이라크 전쟁 이후 테러 활동에 고민하는 미국이 그보다 훨씬 많은 희생자를 낼 핵전쟁을 아무리 제한된 형태라 해도 감수할 가능성은 적다.
 
북한의 목표는 체제보장을 얻는 것이고, 그 영향은 어떤 형태로든 일본에 파급된다. 하지만 '평화헌법'을 내건 일본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많지 않다. 좌절감이 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경제제재, 혹은 경제원조가 모두를 해결해줄 듯이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을 오도할 분이다. 고정관념에 의지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 제3절 '한국은 남북통일을 원하는가 - 상식을 의심한다'는 생략합니다.
 
- 북한 체제는 어디서 왔는가 : 역사적 인과관계를 본다
 
거리에 넘치는, 지도자를 찬양하는 표어와 포스터. 혁명의 숭고함과 민족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며 줄지어 학교에 가는 아이들. 광장을 가득 메운 대군중의 매스 게임. 미국에 대한 저주와 비난으로 가득찬 집회. 그렇게 잘 입었다고는 말하기 힘든 패션으로 몸을 감싸고 가슴에는 '위대한 지도자'의 뱃지를 붙이고 지나다니는 사람들. 거리를 내려다보는 언덕에는 거대한 동상이 세워져, 사람들은 다투어 꽃을 바친다.
 
북한체제는 확실히 기묘해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북한같은 이상한 체제를 상대로 대화만으로 해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틀렸으며 위험하기도 하다(요미우리 신문, 2003.3.26)'는 인상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북한은 왜 이런 체제가 되었을까. 이런 글을 보자.
 
그의 생생한 인격은 노동자를 투쟁으로 고무한다. 그의 말은 매일 새로운 노동자의 행동을, 대중의 영웅적 행동을 고무하는 원천이다. 그의 사상은 우리가 전진하는 길을 밝게 비춰주는 횃불이다...(중략)...그의 이름은 깊은 애정을 갖고 불려지며, 세계에 이르는 곳마다 대중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의 이름이야말로 공산주의의 광범위한 깃발이다.
 
스탈린 동지 만세! 그 이름으로 우리 적은 두려워하고, 전 근로대중은 기쁨에 넘친다. 우리의 사랑하는 스탈린 만세!
 
잘 알듯이, 2차대전에 패한 일본이 한반도에서 철수한 후, 북쪽을 점령한 것은 소련이었다. 소련은 이 지역의 지도자로서 빨치산 운동 지도자였던 김일성을 선출하고 그를 중심으로 북한을 만들어냈다.
 
당시 세계에는 동유럽을 중심으로 소련이 만든 이런 체제가 많았다. 그런 새 국가체제가 모델로 한 것은 소련이었다. 당시 소련은 스탈린 독재의 절정기였고 극심한 개인 숭배가 행해졌다. 이런 소련을 본받은 북한을 비롯한 신생국가들 역시, 지도자들이 '작은 스탈린'으로 불리며 스스로를 절대화했다.
 
김일성도 이런 '작은 스탈린' 중 하나였다. 다른 점이라면 스탈린 사후의 '스탈린 비판'으로 동유럽의 '작은 스탈린'들은 실각한 데 반해 김일성은 권력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당시 깊어지던 중소분쟁을 교묘히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유지했다. 그리고 개인숭배를 계속 추진하여 신격화의 단계로 나아갔다. 현재 북한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위치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오늘 북한 체제에서 느끼는 이질성의 많은 부분은 사실 북한 스스로 만들어냈다기보다는 스탈린 시기 소련, 문화혁명기 중국의 영향이다. 그것이 기묘해보이는 원인은 사회주의가 붕괴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도 북한이 사회주의, 그것도 스탈린 시대의 매우 왤된 형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은 '이상한 나라가 된' 것은 아니다. 변한 것은 시대와 주위 상황이고, 기본적으로 그들은 시대의 산물이며 과거 체제의 유물에 자기 나름의 '양념'을 한 것 뿐이다. 문제는 현재 우리의 상식과 비교해 그들이 얼마나 다른가가 아니라, 왜 이런 시대에 뒤떨어진 체제가 살아남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북한 체제의 이질성만을 강조해서는 북한 문제의 해결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체제가 오늘날처럼 된 원인을 생각하고, 거기 대응할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 '모르는 것'과 대면한다
 
그래도 북한의 행동을 보고있으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체제를 이해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확실히 북한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북한은 최대 우방인 중국조차 경계하고 있고, 자국민이 국경을 넘는 것은 물론 외국인이 국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북한 라디오에는 채널이 없다(물론 채널이 있는 라디오가 정말로 없을리는 없다)'는 에피소드에 나타나듯, 대중매체도 없고 모든 정보는 정부가 통제한다.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북한 관련 정보는 북한 정부 자신이 발표한 것이 아니면 한국을 비롯한 외국의 관측, 외교가와 북한계 조직에서 흘러나온 것, 또는 소위 '탈북자'에 의한 것으로 한정되어있다. 독자적 정보수집이 어려우니, 세계의 북한 연구자가 이용할 수 있는 정보는 실은 대개 비슷한 것들이다.
 
재밌는 것은, 같은 정보를 쓰는데도 연구자들이 내리는 결론은 다양하다는 것이다. 북한 체제 자체에 대해서조차 어떤 사람은 그것이 오늘 내일이면 무너질 것처럼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체제가 수년 내에 붕괴할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전에 말했듯 같은 정보를 써서 완전히 다른 결론이 나온다면 거기에는 논리의 비약이나 오류가 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해 생각하는 경우에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논의하는 것의 대부분에 있어 근거로 삼을 충분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지금까지 북한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들었다. 하지만 그 수치는 한국에 대한 자료와는 명백히 다르다. 북한 자료는 넓이를 빼면 대개 추정치이다. 인구조차 정확히 모르니, 경제 자료는 대충 짐작만 할 뿐이다. 경제가 성장하나 침체하나 같은 큰 방향은 알아도, 상세한 수치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북한의 정치적 동향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라면 당연히 알 수 있는 의회 내의 논의 동향이나 정부 요인의 동정도 알아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북한 연구자들은 이를 알기 위해 조선로동당 기관지의 글자 하나 하나에 주목하고, 여러 행사에서 요인의 자리 순서와 서있는 위치를 보고 추정한다. 핵무기가 확실히 있는지, 몇 개인지, 사용 가능한 것인지도 아무도 모른다.
 
북한에 대해서는 누구나 이 정도 정보밖에 얻을 수 없다. 북한 체제는 붕괴하는가, 하지 않는가 - 이에 관해 단언하는 사람들은 충분한 자료나 객관적 분석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사람들을 이끌어 자신의 예측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그건 분석이라기보다는 운동이다.
 
그들의 운동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주장을 부동의 사실로 받아들여서도 안될 것이다.
 
북한은 붕괴할까. 아닐까. 북한은 미국과 일본을 핵미사일로 공격할 능력이 있을까. 없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성실한 대답은 '모른다'이다. 이건 그들이 비합리적이고 이질적인 국가여서가 아니다. 그들에 관한 정보가 적어서 신뢰할만한 결론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모른다'는 사실과 대면하고 그것을 전제로 북한에 대한 우리의 대처법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모른다'는 사실과 솔직히 마주하여 다른 나라와 똑같은 눈으로 북한을 볼 때, 거기서부터 새로운 모습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