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야기

입시, 제발 그만 좀 바꿔라

술이부작 2011. 8. 29. 21:07
(2004년 10월 28일에 썼던 글입니다.)


교육부가 또 입시 개선안이란 걸 발표했다. 수능의 점수를 완전히 없애고 내신의 비중을 높이겠단다. 수험생들을 '줄세우기' 일부러 어렵게 만들어 대학의 서열을 완화시켜 보겠다는 이러한 발상은 사실 2000년도 수능부터 일관되게 계속되어 온 방침인 것이다. 고착화된 대학간 서열이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라는 점에는 누구나처럼 나 역시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안타깝게도 성공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왜? '줄세우기'와 '커트라인'은 대학 서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커트라인이 높기 때문에 서열이 높은 것이 아니라, 서열이 높기 때문에 커트라인이 높은 것이다. 한국에서 서열이 높은 대학이라는 것, 명문대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학문적 성취나 교육의 질을 떠나, 그것은 곧 그 대학, 그 학과의 졸업장이 취업과 출세에 유리한 지위를 보장해준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소위 명문대로 몰리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 대학의 커트라인이 올라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커트라인을 모호하게 만들어 대학 서열을 없애겠다는 발상은 미봉책이요, 완전히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다. 이번 '개선'안은, 사실 진짜 '개선'인지도 모르겠으나, 지금까지와의 모든 입시 제도 개혁과 같이, 실패할 것이다. 그것이 고교 교육 정상화와 대학 서열 완화를 목표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본질은 놓아두고 곁가지에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육 문제는 이미 교육정책, 그것도 입시제도로 환원되는 교육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학벌 사회의 타파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해 온 문제이다. 교육부는 제발 입시 제도 좀 그만 바꿔라. 괜히 애꿎은 수험생과 학부모, 선생님들에게 괜한 혼란을 안겨주어선 안된다.
 
진정으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학벌 타파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테면, 각종 국가고시 합격자 선발시 동일대학 출신을 30%(내지는 효과가 있을 정도의 비율) 이내로 제한하고, 고위직으로 갈수록 이를 엄격히 시행해야 한다. 터놓고 얘기해서, 서울 법대에 들어가도 사시에 합격할 확률이 오히려 더 줄어든다면, 누가 서울대 법대에 가려고 할까?
 
물론 위에 쓴 주장은 아이디어 차원의 것이고, 정책으로 구체화할만한 단계는 아니다. 반발이 심할 것이다. 이건 공산주의라는 소리가 벌써 귓가에 들린다. 하지만, 학벌 타파를 위한 사회적인 실질적 노력을 하지 않는 한, 교육 정상화는 되지 않는다. 학벌 문제에 무관심하다면, 교육 문제를 논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