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잡기장

제목에 낚이다 - 백수생활백서

술이부작 2011. 8. 30. 21:33

낚였다. 제목이야 익히 알던 소설이지만 내용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그저 요즘 좌파고 우파고 청년실업이 문제라고 안 하는 사람이 없고, 청년백수 백만1)을 운운하는 시대인 만큼,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소설이라면 뭔가 '88만원 세대'2)를 착취하는 잔인한 사회구조와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백수의 모습이 그려져있는 게 아닐까 추측했을 뿐이다.

하긴 이런 투박한 접근으로는 소설이 안 될 거다. 하지만 제목을 보면 뭔가 전형적인 백수의 생활을 묘사할 것 같으니, 내 오해도 정당한 것 아닐까. 아버지로부터 다달이 쓸만큼의 용돈을 받으며 하루종일 소설 읽기로 소일하는 백수를 '전형적인' 백수로 보기는 어렵다.

최근의 많은 한국 소설이 그렇듯이, 이 소설의 주인공 또한 특별한 인물은 아니다. 있는듯 없는듯, 사회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인물이다. 주류가 되려는, 성공하려는 욕망따위 없이 지금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소설만 읽고 살아가고픈 사람.

소설을 쓰려면 취재를 해야 한다. 소설만 읽고 사는 주인공의 생각과 삶을 묘사하기 위해 이 소설에는 다양한 소설들이 인용된다. 전거로 들 수십 편의 소설을 찾기 위해 작가는 수백 편을 읽었을 터. 날마다 소설만 읽는 주인공은 어쩌면 작가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소설 속 주인공을 작가와 동일시하는 건 무지한 독자들의 대표적 오류지만, 나는 작가에 대해 더 알아보지 않고 이 오류를 계속 견지하려 한다. 제목에 낚인 독자로서 이 정도 권리는 주장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만 읽는 생활도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될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양한 소설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가 이미 나왔으니, 이제 같은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또다른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백수들은 다시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 생존을 향한 치열한 경쟁이 일상화된 시대의 풍경이다.

 

1) 근데 사실 통계청 통계로는 총 실업자 수도 80만에 불과하다. 청년 백수가 백만명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똑같은 글만 나오니 알 수가 없다. 물론 청년실업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다. 청년 고용률은 42%에 불과하다. 실업자 80만 중 청년층이 30만 명이니, 인구비례보다 심하게 불균형하다. 구직포기자까지 합하면 청년 백수의 수는 더 많아질 것. 그저 '100만 백수'의 출처가 궁금하다는 것 뿐이다. 청년층 총인구는 7백만, 비경제활동인구는 230만명이다.

2) <백수생활백서>(2006)는 <88만원 세대>(2007)보다 먼저 나왔다는 거, 알고 있으니 뭐라 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