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분식회계의 역사 - <기업의 거짓말>
김도년·유윤정, <기업의 거짓말>, 시대의창, 2016.
우리나라에 분식회계를 저지른 기업이 이렇게 많았나 싶다. 책에 소개된 사례는 국내 기업만 20곳에 육박한다. '코어비트'같은 중소기업부터 효성그룹, SK글로벌 등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분식이 확인된 게 아니라 의혹에 그친 경우도 있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곳도 있긴 하지만 주제엔 변함이 없다.
외부 감사까지 받는 회계장부를 조작하기 위해 기업은 어떤 수법을 쓸까? 책에 등장한 기업들을 보면 허위 매출, 대손충당금 축소, 대출 기재 누락, 재고자산 부풀리기, 특수목적법인(SPC)과의 거래, 허위 자산 등록, 비용에 해당하는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 비상장주식·무형자산 가치 부풀리기 등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한다.
중소기업도 대기업도 분식회계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고, 정부 포상을 받은 기업도, 공공기관의 보증을 받은 기업도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다. 실제로 희대의 사기극을 벌인 모뉴엘, 네오세미테크는 국무총리상, 장관상을 받은 기업이다. 그렇다면 일반인, 또는 기자는 분식회계를 어떻게 발견해낼 수 있을까?
쉬운 일은 아니다. 회계사도 걸러내지 못한 조작을 비전문가가 어떻게 집어낼까. 다만 저자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매출이 늘어나는데 재고가 늘어난다면 의심해볼만하다(상품이 잘 팔리는데 재고가 늘어난다?). 매출이 늘어나는데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적자라면 의심해볼만하다(장사가 잘 되는데 돈이 안 들어온다?). 유형자산이 늘었는데 감가상각비가 늘지 않으면 의심해볼만하다(설비가 늘면 감가상각비는 당연히 늘어야). 하지만 이것도 특수한 사례일 뿐이지 일반적으로 해당되는 건 아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분식회계 사건, 막을 방법은 없나? 기업에서 일감을 따와야 하는 애널리스트와 회계법인은 '을'일 수밖에 없고, 기업 2만 2천 곳의 재무제표를 감리할 금융감독원 인력은 30명에 불과한 현실에서 분식회계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책은 쉽고 술술 읽힌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다. 난 뭘 기대한 걸까? 다 읽고서 생각해보니 나는 회사 내부 인물들이 회계장부를 어떻게 조작하는지 소설처럼 재현한 드라마틱한 글을 기대했던 것같다. 물론 무리라는 건 인정한다. 기업 한 곳의 얘기만으로 책 한 권이 될 거다. 다만 분식회계를 얘기하면서 굳이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나 경제민주화, 프로이트의 '이드'와 '슈퍼 에고'같은 개념을 얘기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대학 시절, 어느새 국가대표로 뛰는 선수들 나이가 내 또래라는 걸 깨닫고 자괴감이 들었더랬다. 이제는 책을 내는 저자들이 내 또래다. 여태 대체 뭐하고 살았는지. 저자 부부도 아마 내 또래로 추정되는데, 책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평하긴 했지만 사실 변변한 책 한 권 낼 전문분야 하나 없는 기자로서 부러운 게 사실이다. 저자는 최근에도 꾸준히 분식회계 관련 기사를 쓰는 듯하다. 나는 저자와 일면식도 없지만, 현장에서 좋은 활동을 계속 해주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