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이야기

60년의 영토분쟁 - 카슈미르 이야기

술이부작 2011. 8. 29. 21:06
(2004년 10월 10일에 썼던 글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서도 인도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져서, 카슈미르라는 이름도 어느 정도 친숙해졌는지 모르겠다. 무굴 제국 시대부터 황제들의 여름 휴양지로 유명했고, 영국 식민지 시절에도 많은 서양인들이 찾아와 풍광을 즐긴 곳이니만큼, 인도 여행 코스에서도 빠지지 않아 이곳 땅을 밟아본 한국인도 꽤나 될 법 하다. 하지만 카슈미르는 또한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치열한 영토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 글은 인도측 자료를 주로 참고해서 쓰여진 관계로 내용이 편향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파키스탄측 입장은 한국이슬람학회, <끝나지 않은 전쟁>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카슈미르, 어디인가?

 

 

비행기 한 번 못 타본 나 같은 사람에게는 지도가 참 요긴하다.--;
이 부근 경계선이 참 복잡하다.
인도령 카슈미르는 중국과의 국경분쟁도 떠안고 있고,
파키스탄은 자국령 카슈미르 중 일부를 중국에 양도했으나
인도는 여전히 그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출처 : 네이버 포토앨범)

 

 

카슈미르는 인도의 서북부, 파키스탄과의 국경지대에 있고, 북으로 중국과 접하고 있다. 보통 잠무, 카슈미르, 라다크의 세 지방으로 구분되지만 행정적으로 라다크는 카슈미르에 포함된다.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의 그 라다크이다. 지역 안내를 보니 ‘달나라와 같은 환상적인 경치를 자랑한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달나라라고 하나 했더니 이렇다.

 

그 외에도 카슈미르 주의 수도 스리나갈은 수공예품으로 유명하고, 맑은 호수와 수상주택도 명물이라 하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다녀오신 분들이 직접 할 것이지 내가 할 얘기가 아닌 것 같다. 카슈미르 분쟁의 역사로 넘어가자.

 

카슈미르 지방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내려온다. 전설에 의하면, 카슈미르 지역은 원래 거대한 호수였다. 그 호수 속에는 무서운 괴물이 살아 주변 주민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한 위대한 스님이 나타나 호수의 물을 모두 마르게 해버렸다. 물 속에 살던 괴물은 호수가 없이는 살 수가 없었고, 사람들을 괴롭히던 그 괴물은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평화가 찾아온 이 지역을 사람들은 물(ka)이 마른 땅(shimeera), 카슈미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카슈미르의 가격은 166달러?

고대에는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로서 한때 주변으로부터 조공을 받기도 했고, 무굴 제국 시대에는 황제들의 여름 휴양지로 유명했던 카슈미르이지만, 18세기 중반부터 아프간과 시크의 강압통치를 받으며 국운이 점차 기운다. 그러는 사이 인도에 진출하고 있던 영국과 전쟁이 일어나 패배하지만, 한 귀족이 영국에 166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카슈미르의 독립을 얻어낸다. 도그라 왕조가 시작된 것이다(1846년).

 

* 이 166달러에 대한 자료가 다 제각각이다. 6백만 루피, 750만 루피, 100만 파운드, 3만 달러 등 자료마다 수치가 다른데, 실제 가치가 어느정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

 

왕 되기는 쉬워도 유지하기는 어려운 법. 각지에서 수차례 반란이 일어났고, 이를 통제할 능력이 없던 정권은 다시 영국의 힘을 빌린다. 영국의 섭정을 벗어난 것은 1921년이 되어서였다.

72일간의 독립

영국 영토는 아니나 영국 왕실에 충성을 표시하는 '토후국'의 지위를 갖고 있던 카슈미르는, 1947년 영국이 인도에서 물러남에 따라 다른 560여개 토후국들과 마찬가지로 3가지의 선택지를 갖게 되었다. 인도로 편입이냐, 파키스탄으로 편입이냐, 아니면 독립이냐. 각 공국의 통치자는 8월 15일까지 자기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되어있었다.

카슈미르의 '무슬림 회의'는 독립을 결의하였다. 하지만 카슈미르에 무슬림이 많다고는 해도, 30%를 넘는 힌두 인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왕 자신이 힌두교인인 것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카슈미르 국왕이 결정을 못 내리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8월 15일에 카슈미르는 자동으로 독립국이 되었다.

애가 탄 건 파키스탄이었다. 사절을 파견해 왕을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이번에는 카슈미르로 통하는 도로를 봉쇄하고 소금과 원유 등 필수품의 금수 조치를 내렸다. 당시로서는 모든 도로가 파키스탄을 경유해야 했기 때문에 시민들은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는 파키스탄 내부에 난립하던 군벌들을 부추겨 카슈미르로 진군하도록 했다.

카슈미르에 제대로 된 군대가 있을 리가 없었다. 도움을 줄 영국군도 철수한 지 오래다. 시민들이 민병대를 조직했으나, 파키스탄 군을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인도 군대 뿐이었다. 카슈미르는 인도로의 편입을 결정한다. 10월 26일의 일이었다.

세 번의 전쟁, 10년의 테러


인도의 대응은 신속했다. 하루만에 군대 파견을 결정하고, 유엔 안보리에도 이 문제를 회부했다. 전투는 인도의 승리로 끝났지만 파키스탄도 카슈미르의 3분의 1가량을 점령했다. 유엔은 파키스탄 점령지구를 유엔 위원회가 관할하게 하고, 양측 지역 모두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고 결의하였으나 양국의 비협조로 결의안은 사문화되었다. 오히려 파키스탄은 자국측 카슈미르를 ‘아자드(자유)’ 카슈미르라 명명하여 영토에 편입시켜버렸다. 인도령 카슈미르 역시 애초 약속받았던 광범위한 자치권 대신 중앙정부의 간섭과 통제를 받아야 했다.

이후 양국 관계는 카슈미르로 인해 극도로 악화되었다. 파키스탄은 1965년에 다시 전쟁을 일으켜 카슈미르를 점령하려고 시도하였으나 패전하고 22일만에 휴전했다. 1971년에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 독립으로 인해 3차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카슈미르는 주요 전장이었다. 여기서 파키스탄은 다시 패배하였고, 이후 모든 문제를 양국간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합의한다.

하지만 파키스탄이 카슈미르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내 무장단체들에 훈련처와 자금, 무기, 인력 등을 지원하며 테러를 부추겼고, 이는 무수한 인명/재산 피해를 낳으며 사회 혼란을 야기하였다. 이후로도 양국은 핵탄두가 장착된 미사일이 발사 준비 상태까지 가는 전쟁 일보 직전의 상황을 수 차례 경험했다. 하마터면 냉전시기에도 없던 핵전쟁을 어이없게도 탈냉전 후에 서남아시아에서 볼 뻔한 것이다. 현재도 카슈미르는 양국간 제1의 현안으로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누구나 명분은 있다


파키스탄은 영국령 인도가 독립할 당시 ‘힌두교 인도’와 ‘이슬람교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하였으므로, 무슬림 인구가 다수를 점하는 카슈미르는 '자연적으로' 파키스탄의 영토인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카슈미르의 인도 편입 결정은 당시 국왕이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결정한 것인 만큼 당연 무효이고, 편입 요청을 접수할 당시 인도가 카슈미르의 국민투표 실시를 전제했으니, 민족자결 원칙에 의해 국민투표로 카슈미르의 장래가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인도는 종교에 따라 양국이 분리 독립했다는 주장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무슬림 인구 수로 따지면 인도는 세계 제2의 이슬람 국가인데, 그럼 인도 전체가 파키스탄으로 편입되어야 하느냐는 얘기다. 게다가 방글라데시는 종교가 같음에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했으니, 국가 선택과 종교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국민투표에 관해서도, 당시 카슈미르 국왕의 인도 편입 결정문은 다른 560여개 토후국들이 서명한 문서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만큼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카슈미르는 인도 영토의 완전한 일부이고, 이에 대해 민족 자결권을 내세우는 것은 부당하며, 오히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서부터 국민투표를 실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파키스탄이 국민투표를 주장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시 지역은 인도측 카슈미르만을 대상으로 할 뿐이며, 선택지에도 인도냐 파키스탄이냐만 들어가야지 '독립'이 포함되어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속이 너무 빤히 들여다 보이는 주장인데, 이런 제안을 인도가 수용할 리 없다. 결국 '평화적 해결'이라는 공허한 합의만 계속되는 가운데 실질적 진전은 없이, 지역 주민들의 삶만 비참해질 뿐이다.

평화와 민족주의


오랜 적대관계를 끝내기 위해, 지난 9월 24일에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 정상이 만나 모든 분쟁의 평화적 해결 및 신뢰 구축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외교관계 정상화, 양측 카슈미르간 버스 운행 재개 등의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진정한 양국간 평화 정착의 계기가 될지, 아니면 지난 60년간의 여러 합의문처럼 또 하나의 휴지조각으로 변할지는 미지수이다.

 

인도는 ‘고토 수복’이라는 단호한 입장이고, 최소한 현재의 영토는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역시 국민투표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양측이 근 60년간 해당 영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해오고 있는 마당에, 자국 영토를 선뜻 포기하겠다는 선언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도 세 차례나 전쟁을 겪은 원수에게 양보하지는 더더욱 못할 것이다. 자기 땅을 독립시켜 주는 것도 쉬운 결단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현실성이 있어보이는 대안은, 양국이 모두 카슈미르 지역에 대해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고, 양측 카슈미르간에 인력과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즉, 카슈미르를 사실상 준 독립국 수준으로 만들되 양국이 현재의 자국 영역에 대해 명목상의 영유권을 갖는 방안이다.

 

카슈미르 문제 해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양국의 국내 여론일 것이다. ‘엄연한 우리 땅’을 왜 ‘빼앗기냐’라는 국내 강경 민족주의 세력의 반발은 양국이 카슈미르 문제를 협상을 통해 해결할 여지를 없앤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영토분쟁이 평화적으로 해결되느냐, 아니면 끊임없는 긴장과 갈등 속에서 최악의 경우 또 한 번의 전쟁을 낳느냐는, 양국 정부가 자국의 민족주의를 어떻게 관리하고 설득하느냐에 달려있다.

 

카슈미르 인 자신들의 생각은 어떨까? 그들은 인도의 강압 통치에도 반대하지만, 파키스탄으로의 편입도 거부한다. 한 지역 언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66%의 주민들이 테러에 반대하지만, 70%가 독립을 지지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