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이야기2013. 3. 13. 17:02

미국의 '농구 외교', 북한에 통할 수 있다

 

다니엘 핑스턴(국제위기그룹 동북아시아 프로그램 프로젝트 부국장)

 

※ 이 글은 <가디언> 3월 12일자에 실린 Why US 'basketball diplomacy' with North Korea might just work를 번역한 것입니다. <가디언>은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의 블로그에 실린 US-DPRK Basketball Diplomacy: Maybe President Obama Should Pick up the Phone 라는 글을 요약해 실었습니다.

 

 

이번 주 한미 합동 군사 훈련이 시작된 뒤, 북한은 정전 협정 백지화를 선언했다. 북한 정권의 3차 핵실험과 선제 핵 사용 위협에 대해 UN 안전보장이사회가 추가 제재를 가한 뒤 북한은 위협을 계속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톰 도닐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에 "모든 역량을 동원한" 보복을 경고하면서 중국에 강력한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전문가들이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정책 대안을 찾기 어려운 시기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두 차례 북한에 특사를 보내 '적대 국가와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공약은 지켰지만, 성과는 없었다. 남한의 이명박 정부도 북한 당국자와 2009년 10월, 2011년 6월 두 번에 걸쳐 비밀 접촉을 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이제 전직 NBA 챔피언에 7년 연속 NBA 리바운드 왕을 차지했던 농구 천재 데니스 로드먼이 대대적인 보도 속에 평양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로드먼 일행엔 '할렘 글로브트로터' 농구단 선수 3명과 바이스 미디어 취재진이 포함됐다. 이들 방북단, 특히 로드먼은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로드먼은 김정은을 '평생의 친구'이자 '대단한 사람'이라고 불러 비난받고 있다. 부산대 로버트 켈리 교수가 정리한대로, 외부 유명 인사가 북한을 방문하게 되면 북한 정권의 신뢰도를 높여주면서 대내 선전 선동에 이용되기만 하는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나는 켈리 교수의 입장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로드먼의 방북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는 북한에 변화의 창문을 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북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변화가 생기려면 우선 북한 주민들이 정권의 통치, 구성 원리, 선군사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먼저 북한 내부에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이 있지만, 라디오와 텔레비전 채널이 고정돼있어서 주민들은 국영 방송밖에 접할 수 없고, 시민들에겐 외부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이나 다른 수단이 없다. 정부 공식 발표와 선군사상의 모순을 드러낼 다른 정보를 접할 기회가 제한된 상황에서, 미국 정부 등은 로드먼의 '농구 외교' 제안을 일축해선 안 된다. 로드먼의 방북은 북한 지도부에게 매우 중요했다. 김정은은 전직 미국 대통령이나 다른 국가 수반은 무시했고, 전직 미 정부 고위 관료나 구글 회장도 마찬가지였지만, 로드먼은 직접 만나러 나왔고 가볍게 나란히 앉아 경기를 봤다.

 

방북, 접견과 북한 매체들의 보도는 북한 정권에 스포츠가 중요하다는 점을 반영한다. 북한 정권은 스포츠를 사회적 통제 강화와 전체주의적 단결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 열린 사회, 다원주의 사회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치를 떨 일이다. 북한은 사회적 통제라는 측면에서 따라올 나라가 없다. 시민사회는 없다. 감시와 통제를 위해 광범위하고 다양한, 이중 삼중의 기구들이 있다. 인민반, 사회안전부, 인민보안성,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보위사령부 등이다. 당의 권한과 국가 통제를 벗어난 활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지난해엔 모든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통제하고 김정은 정권을 찬양하기 위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었다. 이런 목표에 기여하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로드먼의 방북을 이런 맥락에서 해석했다. 하지만 어쩌면 로드먼의 방북은 북한 정권 전복을 위한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도 있다.

 

북한 지도자들은 체제 유지를 원하고, 그들이 실시하는 변화는 개혁이 아니라 체제 강화를 위한 거다. 그들은 소비에트 체제를 개선하려고 정치 개혁과 재편을 추구했던 고르바초프의 '실수'를 통해 배웠다. 북한 지도부는 스포츠 교류가 분명 자신들의 목표를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소련에, 여행 제한 해제가 동독에서 그랬던 것처럼, '농구 외교'는 북한 정권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이 정권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 출발점은 여러 종류의 통치 형태와 사회 조직을 접해보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아마도 인적 교류가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로드먼의 방북은 김정은이 로드먼과 포옹하는 장면에서 혁명적이었다. 지도부가 이질적인 존재를 허용, 혹은 수용하는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남한의 <데일리 NK>는 지방의 북한 주민들이 두 사람의 포옹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수많은 문신과 피어싱을 한 미국인을 김정은이 껴안는 것은 '도깨비, 혹은 미국 마피아'를 껴안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농구 발전 재단'같은 걸 만들어서 이런 걸 제도화하는 건 어떨까? 북한의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 전직 NBA 선수 몇 명이 이사로 활동할 수 있을 거다.

 

재단은 평양에서 농구 훈련 클리닉을 열 수도 있겠지만, 조건이 있다. 북한 팀이 클리닉과 함께 해외 토너먼트 경기에도 참가하는 것이다. 물론 북한의 비용 부담은 없다. 농구 외교를 하자고? 좋다, 와이키키 해변에서 열리는 캠프와 토너먼트에 북한 농구 팀이 참여할 수 있도록 우리가 3주 일정의 모든 비용을 대겠다. 시드니, 밴쿠버, 홍콩, 마닐라, 기타 곳곳에서 토너먼트를 열자.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농구 경기를 여는 건 어떤가? 조선인민군 팀과 다른 나라 군대 팀 간의 경기와 함께, 북한 대표 선수 NBA 선수단이 단일팀을 만들어 특별 경기를 열 수도 있을 거다. 김정은이 농구 외교를 원한다면 난 이렇게 말하겠다. "그래, 하자!"

 

김정은이 진짜 외교로 돌아오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린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전화를 걸어서 매년 '오바마-김정은 평화 농구 토너먼트'를 열기 위한 세부 사항을 논의할 수도 있을 거다. '핑퐁 외교'가 70년대에 미중 관계를 녹였듯이, 농구 외교는 적절히 실행되기만 한다면 북미 관계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술이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