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잡기장2013. 6. 30. 23:44

연세대 문정인 교수가 중국 국제정치학계 전문가 21명과 대담을 나눴다. 중국이 생각하는 세계 질서와 중·미 관계부터 한·중 관계와 북한 핵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해 중국 지식인 자신들이 입장을 밝혔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인식은, 인터넷의 이른바 '대륙 시리즈'가 상징하듯 아직은 수준낮은 나라, 그러나 무섭게 성장하는 나라, 북한을 동북 4성으로 편입하고, 언젠가는 우리도 예전처럼 '조공'을 바쳐야 하게 될지도 모르는 무서운 나라 정도 아닐까 싶다. G2라는 개념엔 이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그래서 나오기도 한다.

 

정작 중국인들 자신은 G2라는 개념에 손사래를 친다. 지금의 미국 중심 세계질서에 도전할 생각도 없다고 단언한다. 중국은 현재 국제 질서의 수혜자이고, '슈퍼 파워'로 행세하기보다는 국내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중국인은 강대국의 책임을 받아들일 준비도 안 돼있고, 군사력도 경제력도 여전히 미국에 비할 바가 아니며, 미래에 미국에 견줄만한 강대국이 된다고 해도 G2 체제보다는, 더욱 많은 나라가 국제 질서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 다자주의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강조한다. 왕이저우 베이징대 교수의 아래와 같은 말이 이런 입장을 잘 드러내 준다.

 

중국은 전통적인 강대국으로부터 여전히 학습을 해야 한다. ... 미국의 제도, 교육, 과학기술, 사상, 정치권력의 견제와 균형 등은 중국이 전향적으로 배워야 할 부분이다(왕이저우 교수, p. 109).

 

중국은 영토 확장의 야심이 없고,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도 여러 사람이 거듭 강조하는 점이다. 특히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이 될 거라는 주장은 한 목소리로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한다.

 

중국이 북한 문제에 개입하게 된다면 이는 오히려 미국의 요청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으로서는 북한 내정에 개입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정비젠 교수, p. 39).

 

북한은 주체사상으로 무장돼있다. ...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장롄구이 교수, p. 301).

 

주체사상이 무엇인가? 친중 쿠데타 발생은 절대 불가능하다(치바오량 교수, p. 331).

 

그러나 이런 중국 지식인들의 강조에도 중국에 대한 경계심은 오히려 책을 읽을수록 더욱 커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아직은 문제가 많은 나라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중국 지식인들이 입장의 차이를 뛰어넘어 공통적으로 전제하는 건 '중국은 대국'이라는 점이었다.

 

중국은 국제 질서 혹은 원칙과 규범 제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대국이라는 점이다(장위옌 소장, p. 400).

 

빨라도 한 세대 정도가 걸리겠지만 중국은 분명 대국이 될 것이고, 그 때는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이라는 점, 그러니 법과 문화를 정비해야 하고, 국력에 걸맞는 군사력도 갖춰야 한다는 주장, 아무리 '장기적 과제'라고 선을 긋더라도, 바로 옆의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섬뜩할 수밖에 없는 인식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과 중국이 거의 대등한 단계에 이르렀을 때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중국은 끊임없이 묻고 있다.

 

한·미, 미·일 동맹의 미래는 중·미 관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국과 미국이 동반자 관계를 공고히 하고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간다면 한·미, 미·일 동맹의 존속 가능성은 약해질 것이다. 역으로 중미 관계가 불편해지면 미국 중심의 양자 동맹은 지속될 것으로 본다(자칭궈 교수, p. 474). 

 

지역 협력이 미진한 상태에서 현 동아시아 질서는 여타 동아시아 국가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왜냐하면 중국은 미국과의 양자 관계를 통해 동아시아 문제를 다루어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장윈링 교수, p. 223).

 

여기 대해 우리의 보수 진영은 한미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국 학계는 우습다는 반응이다.

 

솔직히 한국은 소국 아닌가. 중국이나 미국은 큰 나라이다. 어떻게 작은 나라가 중국이나 미국 같은 대국을 이간질해서 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인가.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북한을 두려워하고,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강화한다 해서 한국을 두려워할 것 같은가. 가당치도 않은 얘기다(왕지쓰 교수, p. 140).

 

동북아는 사실상 미국과 중국이라는 G2 구도 하에서 움직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인가? 엄청난 착각이고 무모한 발상이다(김경일 교수, p. 300).

 

한국 정부가 표방하는 가치 동맹에 대해선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으면 됐지, 왜 거기에 가치 동맹까지 가미하는 것인가? 가치 동맹의 표적은 중국과 북한 아닌가? 중국은 이에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자칭궈 교수, p. 477).

 

절대적인 기준에서 한국은 약소국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 미국, 일본이라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인 게 분명하다. 우리는 결국 강대국이 짜놓은 동북아 질서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일까? '대국'과 '소국'을 강조하는 저들의 말은, 어쩌면 우리의 인식을 약소국이라는 틀 안에 가두려는 자기실현적 예언 아닐까? 반대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국력을 벗어나는 외교 정책이 화를 부르게 되는 건 아닐까?

 

답이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중국은 분명한 실력과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아무리 강대국이 아니라고 하고, G2 체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도 주변에서 우습게 보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G20이고 한류가 열풍이고 선진국이라고 소리쳐봐야 스스로 실력이 없으면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인터뷰는 2009년에 진행됐기 때문에, 4년이 지난 지금 보면 들어맞지 않은 예측도 있다. 이를테면 북한의 김정은 후계 구도는 '소설이다(p. 288)'라는 김경일 교수의 견해는 보기좋게 빗나갔다. (반면 같이 대담에 참여한 장롄구이 교수는 3대 세습을 단언했다.) 또, 일본 보수파의 반격에는 한계가 있을 것(p. 162)이라고 본 양보장 소장의 예상도, 일본의 우경화가 심각한 오늘 보면 맞지 않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기대가 투영돼 왜곡된 중국이 아닌, 중국 자신이 말하는 중국의 미래 전략을 읽기 위해 이 책은 아직까지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미국, 일본에 치중됐던 기존의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됐다. 이런 서구 편중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나만의 한계는 아닐 것이다.

 

한국의 중국 전문가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솔직히 말해 소위 중국 전문가들은 한국이나 미국의 신문을 보고 정보를 접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준다(왕지쓰 교수, p. 144).

 

Posted by 술이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