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잡기장2013. 3. 25. 23:14

저자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고,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경제민주화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물론 책은 그 전인 2010년에 나왔지만, 이런 이력 때문에 이 책은 우리 경제 현실에 대한 시론이나 정책 제안을 담은 줄 알았다. 때문에 책을 펴자마자 적잖이 당황했다. 이 책은 1991년에 나온 <소득분배론>이라는 책의 개정판이었다. 그러니까 교과서였던 거다.

 

제목만 보고 책을 고르는 인터넷 쇼핑의 부작용이라 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유익했다. 경제적 불평등, 소득 분배에 관한 논의가 이렇게 복잡한 줄 예전엔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아래와 같은 물음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다면 이 책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 소득 분배의 측정 기준은 무엇이 돼야 하나? 개인? 가족? 아니면 가구?

- 지니계수가 더 낮으면 반드시 더 평등하다고 할 수 있나?

-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동시에 소득 분배가 평등해질 수 있나?

- 빈부 격차는 주로 거대한 재산의 상속 때문에 생기는 것 아닌가?

-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는 소득 격차를 늘리나? 아니면 좁히나?

- 세계화는 빈곤을 줄였나, 아니면 양극화를 늘렸나?

 

이같은 물음에 대해 저자는 가상의 사례를 들기도 하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이론을 비교하기도 하며 답을 제시하는데,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지만 실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실증 연구는 대체로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온 경우가 많다. 경제 연구, 소득 불평등 연구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다.

 

성장과 분배라는 선택지 사이에서 저자의 입장은 분명하다. 이제는 '선 성장, 후 분배'가 아니라 '분배를 통한 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교과서라는 이 책의 역할을 잊지 않고 성장론의 입장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대체로 혼자 읽기에 큰 무리는 없는 책이다. 다만 강의와 함께 읽힐 것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상대적 분배율이나 토지 문제를 다룬 장은 조금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참여정부 정책에 대한 보다 자세한 평가가 있었으면 하는 거다. 주지하다시피 참여정부 기간 소득분배는 더 악화됐다. 이건 보수 언론의 정치 공세가 아니라, 지니계수든 5분위 배율이든 어느 통계를 사용해도 드러나는 사실이. 때문에 저자도 "참여정부는 경제의 양극화 추세를 막을 수 없었고"라고 인정한다(p. 480). 그럼에도 참여정부 시기 국가 재정에 의한 소득 재분배 효과가 높아지고 있었다며 "복지 예산을 늘리고 분배에 신경을 쓴 효과"(pp. 479~780)라고 설명한다. 물론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참여정부의 진정성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소득분배는 악화된 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교과서라는 특성상 자세한 설명은 다른 자리를 통해 접해야 할지 모르겠다. 2010년 전면 개정판임에도 아주 최신의 통계가 사용된 건 아니라는 점도, 공신력 있는 자료를 선별하다보니 한계가 있었겠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빈부 격차와 소득 분배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좋은 입문서임엔 틀림 없다. 다 읽고 나면 이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깨달음에 좌절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Posted by 술이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