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야기2013. 3. 4. 21:57

우리는 독도의 '역사적 영유권'에 익숙하다. 신라 시대 우산국 정벌부터 시작해 세종실록 지리지 등을 통해 조선이 독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점이 입증되고, 안용복 사건 등을 통해 조선의 관할권도 확립되는 등 독도는 역사적으로 우리의 고유 영토라는 논리다.

 

이건 물론 독도 영유권의 중요한 한 축이다. 그러면 다른 한 축인 '국제법적 영유권'은 어떨까? 일본은 독도가 자신들의 고유 영토라는 역사적 영유권 주장이 모순에 빠지자 국제법적 영유권을 내세우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들의 논리는 무엇이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오류일까? <독도 1947>(정병준, 돌베개)은 이런 점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해답을 준다.

 

주석을 빼고도 95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외교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는 느낌으로 책장은 쉽게 넘어간다. 다만 이 책의 주제가 '이게 다 미국 때문이다'라고 요약하는 통속적 이해에 빠지는 건 주의해야 할 듯 싶다. 전후 동북아시아 질서를 규정한 대일 평화조약 '샌프란시스코 조약' 문안 작성을 미국이 주도한 건 맞지만, 진상은 그보다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 믿을 나라 하나 없는 냉혹한 세계

 

1. 일본

 

전범국가 일본의 영토는 본토 4개 섬과 주변 부속도서로 제한되게 돼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일본은 부속도서가 아닌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길 수 있게 됐을까?

 

근본적 원인은 허위사실을 유포한 일본 자신에게 있다. 일본은 패전 직후인 1947년 '일본의 부속소도'라는 제목의 영문 팸플릿을 간행하면서 "울릉도에 대해선 한국 명칭이 있지만, 리앙쿠르 암(독도의 서양 명칭)에 대해선 한국명이 없으며, 한국에서 제작된 지도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허위 사실을 싣는다. 심지어 울릉도도 일본 영토라는 취지의 설명을 넣기도 했다.

 

이런 행태는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미국에 패배한 것이지, 한국을 비롯한 구 식민지 국가에 패배한 게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에 식민 지배를 사죄하는 일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식민 통치가 한국에 은혜를 줬다'라는 구보다 망언부터 이어지는 면면한 망언의 전통은 이런 인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2. 미국

 

미국은 처음에 독도를 한국 땅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중국이 공산화되고 냉전이 아시아로 번지면서 일본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다. 대일 평화조약의 목표는 일본에 전쟁의 책임을 묻는 것에서 아시아에 미국의 동맹국을 확보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일본은 어제의 적에서 순식간에 동지로 변한 것이었다.

 

미국 외교관에도 친일 인사가 많이 포진한 상황.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허위 선전을 접한 이들은 독도에 대한 판단을 바꿔버린다. '독도는 한국의 일부로 취급된 적이 없다'고 미 국무부 차관보가 한국에 통보한 것이었다. 이른바 '러스크 서한'이다.

 

다만 이런 결정은 '독도를 한국 영토로 명시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거절하기 위해 차관보 개인이 조약문 작성 마감 시한을 앞두고 내린 것일 뿐, 미국 전체는 커녕 국무부 내에서조차 공식 논의되지 않은 것이었다. 영국을 포함해 다른 연합국과도 협의가 없었던 건 물론이다. 때문에 러스크 서한을 두고 '미국이 일본에 독도를 넘겼다'고 비난하는 건 일본의 주장에 근거를 더해주는 일일 뿐이다.

 

3. 영국

 

공정한 판단을 내린 건 영국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은 처음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곧 명백한 오류임을 깨닫고는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시하고 헷갈리지 않게 지도까지 만든다. '간단한 조약'을 추구했던 미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이런 내용은 최종적으로 생략됐지만, 독도가 영·미 협의에서 의제에 오른 적은 없으므로 영국은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다고 영국이 한국 편이었다고 보면 곤란하다. 한국이 샌프란시스코 조약 서명국 자격을 얻는 데 가장 격렬히 반대한 나라가 영국이었다. 결국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물론 일본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는 체코, 폴란드까지 조약 서명 자격을 얻었지만, 대한민국은 회의에 옵저버로도 참여하지 못했다.

 

- 자력구제의 원칙

 

결국 다들 자기 이익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그럼 한국은? 앞선 글(링크)에서도 적었지만 독도에 관한 제대로 된 자료도 논리도 제시하지 못하고, 정당한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고, 우리 땅 독도가 두 번 씩이나 허락도 없이 외국 군대의 폭격 연습장으로 사용돼 무고한 국민이 희생되는 걸 보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해방과 독립, 전쟁으로 혼란했던 당시 상황을 생각해도 통탄스러운 일이다.

 

그 때보다 지금은 여러 국제 제도가 발전한 것같다. UN의 활동도 늘어나고 있고, 국제적 분쟁 해결 기구도 체계가 잡혔다. 하지만 외국이 우리 영토를 두고 이러쿵 저러쿵 재단했던 1940~50년대와 지금, 세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을까? 이를테면 팔레스타인같은 경우. 수많은 UN 총회 결의를 비롯해 모든 명분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을 보호하는 데엔 무력하기만 하지 않나?

 

다소 뻔하고 낡아보이는 말이지만, 독도를 지키기 위해선 누구와도 맞설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말밖에 달리 방법이 없을 듯하다. 다행히 우리는 이미 모든 정당한 명분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을 토대로 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일본 자신 측의 비판을 옮겨본다.

 

"평화조약을 비준할 때 국회에 제출된 부속지도라는 것이 있다. 그 부속지도를 봐도 다케시마는 분명히 제외돼있다. ... 그 때문에 오가타 부총리가 질문에 대해 '평화조약에 의해 다케시마는 우리 영토'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국제법에 따라 우리 영토'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 일본 정부는 평화조약 상에서 다케시마가 일본의 영토임을 증명한 자료를 제시해야 함에도 아직 제출을 하지 않고 있어 다시 한 번 촉구한다.(가와카미 간이치 일본공산당 의원, 1953.11)"(<독도 1947>, pp. 862~863)

 

Posted by 술이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