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잡기장2011. 8. 30. 21:43
(2010년 5월 17일에 썼던 글입니다.)


(줄거리는 대강 아시겠지만,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법은 여러 가지다. 난 영상에 대해선 모른다. 연출 기법이나 구도의 효과, 색감, 이런 거 모른다. 단지 이야기의 짜임새와 전개 과정이 내가 보는 영화의 주된 요소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하녀'는 그리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만삭의 아내를 둔 사장님의 저택에 미모의 가정부가 들어왔을 때,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극의 진행은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하녀'의 임신, 사장 부인 모녀의 핍박. 섬뜩하다면 섬뜩할 음모가 실행되지만 예측 가능한 수준이다. 하나 남은 관객의 관심은 과연 '하녀'가 어떻게 사장 일가에게 복수를 단행할 것인가.

기대하던 복수는 너무나도 무력하다. 눈 앞에서 목을 매고 분신을 한들, 가진 자들의 일상에는 조금의 균열도 없다. 어린 딸에게 단란한 생일 파티를 열어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사장 일가의 변화는 아무 것도 없다. 이 쯤에 이르면 화를 내지 않을 수 없다. 왜 이 땅의 약자들은 영화 속에서조차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으로 복수해야 하는가.

따지고 보면 그것은 우리의 현실. 제아무리 약자들이 발버둥친들, 사회의 가진 자들이 눈 하나 깜짝한 일 있던가. 그렇다면 '하녀'는 리얼리즘 영화인가. 하지만 이 현실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것. 상류층의 부도덕과 위선은 이미 오래 전에 폭로된 것. 사람들은 이미 한참 전에 분노를 지나 냉소에 빠졌다면, 이를 되새기는 영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새롭게 보여준다기엔 현실이 너무 익숙하고, 분노를 일깨운다기엔 체념한 지가 너무 오래됐다. 결국 스크린에 남은 건 두 배우의 파격적인 노출 뿐인 듯하다.

Posted by 술이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