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이야기2011. 8. 30. 21:47
(2011년 7월 31일에 썼던 글입니다.)


진작 번역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이제야 올립니다. 수해 때문에 지금은 잦아들었지만, 한동안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 때문에 복지 논쟁이 활발했습니다. 복지 확대는 재정적자 확대로 이어져 결국 나라를 망친다는 게 복지 반대론자들의 주장인데요, 그런 사례로 언급되는 나라들의 경기 침체 원인은 사실 다른 데 있다는 내용입니다. 폴 크루그먼, "그들만의 유럽(Their Own Private Europe)", 뉴욕타임스 1월 27일자 칼럼입니다.(http://www.nytimes.com/2011/01/28/opinion/28krugman.html?ref=paulkrugman)


오바마 대통령의 연두교서에선 새로울 게 없었다. 하지만 공화당 폴 라이언 의원이 내놓은 공화당의 공식 반응은 굉장히 흥미롭다. 물론 여기서 흥미롭다는 건 좋은 뜻에서가 아니다.

라이언 의원은 고용과 의료 문제 등에 대해 굉장히 의심스런 주장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원고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다른 나라에 대한 언급이다. "그리스, 아일랜드, 영국, 그리고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을 봅시다. 이들의 대응은 너무 늦었습니다. 그리고 각국 정부는 고통스러운 긴축 정책을 실시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노인들의 연금을 깎고 모두의 세금을 크게 올렸습니다."

재정적자에 처한 유럽은 미적거리다 위기를 맞았다는 얘기다. 그럴듯하지만, 그리스의 경우엔 어느정도 맞는 얘길지 몰라도 아일랜드나 영국의 경우는 전혀 다른 얘기다. 이들은 오히려 실제로는 공화당의 주장을 반박하는 사례다.

사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오랫동안 상상 속에서 자신만의 유럽을 그려왔다. 경제는 불황이고 의료 서비스는 형편없고, '큰 정부' 아래에서 사회는 붕괴되고 있는 곳. 진짜 유럽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과 상관 없이. 그러니 유럽의 부채 문제에 대한 엉터리 이론에 놀랄 필요는 없다.

그러면 아일랜드와 영국에서 진짜로 일어난 일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경제 위기 전에 보수주의자들은 아일랜드를 모범 사례로 꼽았다. 유럽 기준에서 볼 때 세금이 낮고 정부 지출도 적었기 때문이다. 해리티지 재단의 경제자유지수에서 아일랜드는 다른 모든 서양 국가보다 앞섰다.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부 장관은 지난 2006년 아일랜드를 "장기 경제 정책 수립의 모범을 보여준 빛나는 사례"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2006~2007년 동안 아일랜드는 흑자 재정을 운용했고, 선진국 가운데 매우 낮은 수준의 부채 수준을 기록했다.

그럼 뭐가 잘못됐을까? 문제는 규제가 풀린 은행들이었다. 경제 호황 때 아일랜드 은행들은 방만한 운영을 하며 거대한 자산 거품을 만들었다. 거품이 터지자 정부 수입은 급감했고, 은행들의 부채를 정부가 떠안으면서 정부 채무가 급증해 재정적자가 초래됐다. 가혹한 지출 삭감은 수많은 실업자를 만들어냈지만 신뢰 회복에 이르지는 못했다.

아일랜드 사례의 교훈은 그러니까 라이언 의원이 말하려는 것과는 거의 정반대인 셈이다. 그건 "지출을 줄이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가 아니다. 아무리 균형예산을 짜더라도 은행을 효과적으로 규제하지 않으면 위기가 온다는 게 교훈이다. 이는 아일랜드의 경제위기 조사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지적한 내용이다. 보고서는 "규제 완화와 자기 규율에 의존해 온 지난 30년"이 경제 재난을 일으키는 데 일조했다고 결론을 맺는다. 그런데 공화당은 경제 개혁을 가로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나?

영국은 어떨까? 라이언 의원이 지적한 것과 달리, 영국은 사실 채무 위기를 겪지 않았다. 2010년 5월 취임한 데이빗 캐머론 총리가 긴축 재정 정책으로 급선회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 시장의 압력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다.

그런 선택을 한 배경에는 공화당이 즉각적인 재정지출 삭감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논리가 깔려있다. 경기 침체에 앞서 정부 지출을 줄이는 것은 경제 성장을 해치는 게 아니라 사실은 도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럴 듯한 이론일까? 아니다. 2010년 초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던 영국 경제는 4분기에 다시 침체되기 시작했다. 물론 폭설의 영향도 있었고, 한 분기의 통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선 안 된다. 하지만 공공부문 일자리 50만 명 감축의 영향을 상쇄할 것으로 기대됐던 민간 부문의 신뢰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대규모 실업을 앞두고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공화당의 주장에 영국의 경험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라이언 의원의 논평으로 돌아가보자. 다시 말하지만,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오랫동안 진보적 정책을 막기 위해 유럽의 실패라는 미신을 이용해왔다. 최근에는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유럽의 채무 문제를 활용하고 있다. 유럽의 사례는 실제로는 정반대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그런데도 라이언 의원은 부채와 적자 문제에 대한 공화당 내 전문가로 알려져있다. 그러니 그가 실제로는 현재 진행중인 부채 위기에 대해 말 그대로 하나도 모른다는 사실은 앞서 말했듯 흥미로운 일이다. 물론 좋은 뜻에서가 아니다.
Posted by 술이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