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야기2011. 8. 29. 21:01
(2004년 9월 6일에 썼던 글입니다.)

김원웅 의원을 비롯한 59명의 국회의원들이 '간도협약의 원천적 무효 확인에 관한 결의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이 결의안은 원래 지난 2월에 제출되었다가 국회의원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 것인데 이번에 다시 제출된 것이다. 지난번엔 왜 언론에 보도가 안됐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 소식을 듣고 어이가 없어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간도를 분쟁지역화 한다?
 
만약에 우리가 '을사조약은 강박에 의한 조약으로 원천 무효이고, 따라서 이 조약에 따라 체결된 일본과 청의 간도 협약도 원천 무효이다'라고 주장하면, 중국이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하면서 간도 지방의 영유권을 양도할까?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결의안 제안자들도 이런 경우를 기대하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그러면 간도를 과연 되찾을 수 있기는 할까? 국군을 파병해서 점령할까? 이게 가능하다고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국과의 전면전을 상정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할까? 안됐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당사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간도 지역을 멀쩡하게 잘 통치하고 있는 중국이 얻을 것도 없는데 이 지역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는 것에 찬성할 리가 없다. 우리만 해도 독도문제를 재판에 상정하지 않고 있다.
 
만에 하나 이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되었다고 치자. 우리가 승소할 확률은? 이에 대한 답을 내리는 데는, 국제법은 국내법과 달리 입법과 사법이 모두 강대국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정치적 고려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법이론을 고려할 필요조차 없다. 일반적으로 영토 취득의 시효를 50년 정도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수교 이후, 나아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로 우리가 간도 지역의 영유권에 대한 이의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적은 없다. 따라서 재판 결과는 중국 정부의 '실효적 지배'를 인정하는 판결로 날 가능성이 100%이다.
 
영토문제는 국가관계에서 고도로 민감한 문제이다. 이미 결정된 국경을 변경하는 것은 전쟁을 통하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조그마한 섬의 영유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전쟁을 불사하는 것이 각 국가들인데, 한두 평도 아니고, 한반도보다 더 넓은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선전포고와 다름없는 일이다. 가뜩이나 중국은 영토문제에 대해 고도로 민감한데 말이다.
 
이런 사실을 국회의원들이 모를까? 그럴리 없다. 정말로 모른다면 직무유기요, 국회의원으로서 자질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뭐하러 이런 의미없는 결의안을 제출하는가? 물론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맞대응의 성격이 짙지만, 그러려면 좀 더 세련되고 우리에게도 이익이 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를테면, 달라이라마의 방한을 승인한다면(이것도 정부 차원의 공식 초대는 곤란하다. 민간에서 초대하고 정부가 묵인하는 형태가 적절하다) 그를 보고싶어하는 많은 시민들이 만족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한 단계 격상한다든가, 혹은 의원간 교류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이것도 물론 겉으로는 의원들 개인 자격의 교류라는 형태를 취해야겠다. 저자세가 아니다. 중국을 약올리면서도 공식적 항의를 피하기 위한 방법이다).
 
결의안 발의 의원들이 택한 방법은 중국에 '복수'하는 방법 중에서도 최악의 수를 택한 것이다. 한중관계에는 최악의 영향을 끼치면서, 우리에게는 아무런 실익이 없는. 간도의 영유권에 대해서는, '간도협약은 원천 무효였으나 현재로서는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났다'라고 정리하면 된다. 그것도 학계에서 할 일이지 정치권이 할 일은 아니다. 이번 결의안 제출은 오히려 중국내 국가주의자들의 입장만 강화시킨 꼴이 되었다. 이 문제는 이미 임지현 교수가 지적한 바 있다. 한국에서 회자되는 간도 수복, 고토 회복 등의 주장이 오히려 동북공정 추진의 명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둘은 겉으로는 적대적이지만 사실상 공범이라 해야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적대적 공존. 그 구조는 남한 내 반공주의자들과 북한의 강경파들의 관계와 꼭 같다.
 
명분도 실익도 없는 이번 결의안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상정 자체가 곤란한 일이지만, 만일 그렇게 되면 반드시 부결되어야 한다. 어차피 국제법적으로도 아무 효력이 없는 국회 결의안은, 통과된다고 해도 그저 소수 국가주의 분파들의 자위행위에 불과하다. 황소가 되고싶은 개구리의 몸부림.

'한국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Corea 논쟁'은 이제 그만!  (0) 2011.08.29
학벌을 어떻게 깰 것인가  (0) 2011.08.29
민족주의의 유효기간  (0) 2011.08.29
입시, 제발 그만 좀 바꿔라  (0) 2011.08.29
허구의 주민투표  (0) 2011.08.24
Posted by 술이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