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야기2011. 8. 29. 21:12
(2004년 12월 20일에 썼던 글입니다.)

한강
님의 정운찬 총장의 황당한 발언..., 하이에나새끼님의 [다함께] “대학평준화만이 해결책입니다” 에 대한 트랙백입니다.
1. 학벌 해체의 전제는 대학 평준화?
 
우선 대학평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입학생 성적(학생선발)의 평준화, 교육 여건과 환경의 평준화, 졸업생 수준(교육결과)의 평준화 등 평준화의 의미는 다양합니다. <다함께>45호에서 김상봉씨는 이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있지 않으나(<<학벌사회>>를 읽지 않아 그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국공립대 통합선발을 제안하는 것으로 보아 현행 고교 평준화와 같은 입학생 성적 평준화를 뜻한 것으로 보입니다(물론 이것이 다른 의미의 평준화를 배제하는 것은 아닐 터입니다).
 
그러나 입학생들의 성적과 커트라인은 대학의 서열을 ‘반영’하는 것이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위 일류대, 명문대라 칭해지는 대학들은 그 졸업생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출세’하여 권력을 잡고 있기에, 혹은 돈 잘 벌고 출세하기 쉬운 간판이 되기에 학생들이 몰리고, 따라서 커트라인이 올라가는 것입니다(한강님의 ‘줄줄이 마인드’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정확한 지적입니다!). 다시 말하면, ‘명문대’의 간판이 더이상 부와 출세로 연결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학벌 문제에 접근하는 보다 근본적인 방안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김상봉씨의 공직 할당제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지역뿐만 아니라 대학별로도 쿼터를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실현된다면, 대학 평준화 없이도 대학 서열을 해체할 수 있습니다.
 
학생선발의 평준화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현재 국공립대 교육 여건이 비슷하다고 전제하면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입학함을 통해 비슷한 교육 결과가 성취될 것을 기대하는 것이겠습니다만, 이것은 자칫 현재 ‘명문대’의 지위와 권력을 ‘똑똑한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한 결과’로 정당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현재 ‘명문대’의 지위는 물론 학생들의 노력도 있겠습니다만 사회적 인적 네트워크의 힘이 더 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2. 학벌0의 사회는 가능한가
 
물론 그런 사회가 바람직하며, 추구해야 할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발’이 근대 교육제도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라고 인정한다면, 학벌이 완전히 사라진, 절대평등의 사회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평등을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출세가 잘되는, 돈을 잘 버는, 연구 성과가 높은, 취업이 잘 되는 대학은 어떻게든 출현하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런 대학이 새로운 ‘명문’으로 취급받겠지요. 이건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학벌의 존재를 현실적으로 인정하되, 학벌간 격차를 최대한 줄이고, 학벌이 ‘이동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학생들이 명문대에 집착하는 것은 그 간판의 보상이 다른 대학에 비해 매우 큰데다, 바뀔 가능성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바꾸어, 지금의 보상 구조가 이를테면 1위 서울대 100- 2위 연고대 70- 3위 수도권 50- 4위 그 외로 짜여져있다면, 1위 100-2위  95-3위 90-4위 85 하는 식으로 격차를 줄이고, 나아가 언제라도 수도권 어느 대학이 1위가 되었다가, 또 지방 어느 대학이 1위가 되었다가 하는 식으로 학벌 순위의 변동이 가능하다면, ‘명문대’에 집착할 필요는 상당부분 사라집니다. 사실 이런 단계가 되면 대학 서열을 비판할 의미도 없어지죠.
 
세계적으로도 대학 서열이 전혀 없는 국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흔히 프랑스의 대학 평준화를 말하지만, 프랑스에는 대신 그랑제꼴이 있습니다. 그랑제꼴 졸업생들이 누리는 특권은 우리나라 서울대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다만 분야별로 3개로 나뉘어 있다는 것(인문-고등사범학교, 이공-폴리테끄니끄, 행정-국립행정학교), 그리고 매우 소수라는 게 다른 점이겠죠.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현재의 대학 서열 구조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완전 평등이 불가능하다면, 완화된, 부문별, 유동적 서열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3. 기타 각론들
 
- 서울대 정원을 늘리자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방안은 아마 현재 서울대를 서열 1위라 전제하고, 학생 수를 늘림으로써 그것을 희석하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실제 듣기로 멕시코시티 대학은 학생수가 수십만 명이라고 듣기도 했습니다(정확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근대 교육제도에서 ‘차별’과 ‘선발’은 중요한 기능을 담당합니다. 서울대 학부생의 증가로 더이상 차별화가 불가능해지면, 그 때는 과별로 서열화가 될 겁니다. 뭐 지금도 없는 거 아니지만, 더 심해지겠죠. 과별로도 차별화가 안되면 출신 고교, 출신 학원, 대학원 등등..어떤 형태로든 서열화와 차별화는 진행될 겁니다.
 
- 프랑스 같은 제1세계 국가들은 무리없이 대학평준화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다릅니다. 설령 국내 대학이 완전히 평준화 된다고 해도, 유학-외국 학위라는 또다른 학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국내에서 교수 하려면 외국, 특히 미국 학위 없이는 어렵게 되어버렸습니다. 유학이 새로운 학벌로 자리잡게되면, 외국에서 공부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분상승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뭐 지금도 그렇게 쉽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위에 언급한 서열의 완화와 더불어 학문의 종속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 정도로 읽어주십시오.)
 
- 입시 경쟁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며 제3세계 국가라면 정도의 차이일 뿐 어디에나 존재합니다(좀 오래된 책이지만 <졸업장 열병>이라는 책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교육의 본래 목적과 별도로, 근대 교육 제도가 노동력의 선발기능을 수행함으로써 학력/학벌에 따라 차별적인 보상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같은 얘기를 반복하게 됩니다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결국 학력간/학벌간 보상수준 격차의 완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철저한 학사관리나 학부제는 자칫 대학 공부를 학점따기 경쟁으로 만들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봅니다. 결국 학점 잘 주는 과목, 널럴한 과목만이 살아남을 것이고, 재수강, 삼수강 등 소모적 수강이 늘어나겠죠. 학부제를 도입한 대학들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그러니 또 상대평가, 재수강 제한 생기고, ‘대학의 정신은 자유’라는 말은 멀어져만 갈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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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술이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