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야기2013. 4. 26. 18:41

새 정부의 '경제 민주화' 정책이 협공을 받고 있다. 한 쪽에선 무늬만 경제 민주화일 뿐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다른 한 쪽에서는 포퓰리즘에 기댄 기업 때리기라고 공격한다.


급기야 경제 5단체가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정년 연장, 대체휴일제 등 각종 법안에 대해 작심한 듯 비판을 쏟아내며 이대로 가다간 경제가 무너질 거라고 경고했다.


현재 우리 경제는 총체적 난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모두가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더라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그러나 최근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반기업 정서와 시장 경제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각종 경제·노동 관련 규제 입법은 기업의 투자심리를 크게 위축시킴으로써 우리 경제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2013년 4월 26일 경제 5단체 성명)


요약하자면 '경제도 어려운데 무슨 경제민주화' 정도가 되겠다. 하지만 경기가 좋건 나쁘건, 기업의 이윤을 조금이라도 침해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될 때 재계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가령 주 5일제 근무 도입이 논의될 땐 어땠을까?


경총은 성명을 내고 “최근 경제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주 5일 근무제의 도입을 정부가 서두르는 것은 경제 회생 노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2년 3월 11일 동아일보)


고용허가제 도입이 추진될 땐 어땠을까?


기협중앙회는 “고용허가제가 도입돼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내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해 줄 경우, 중소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이 늘어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2003년 3월 28일 한겨레)


심지어 최저임금제가 실시될 때조차 재계의 반응은 같았다.


황정현 경총 전무이사 : 최저임금제가 정치·사회 분위기에 의해 시행될 경우 부정적 요소로 인한 각종 문제가 제기된다. 도입한다면 자력으로 임금을 개선할 수 없는 경우와 단체교섭을 할 수 없는 영역에서만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실시해야 한다. (1986년 4월 23일 경향신문)


물론 이건 우리나라 재계가 특별히 탐욕스럽기 때문은 아니다. 기득권을 빼앗으려 할 때 권력자들이 반발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사례를 보자.

아프리카에선 노예들이 실로 비참한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에, 이들을 영국 식민지로 데려다 놓는 것은 좋은 일이다. (존 풀러 영국 하원의원, 1804년 노예제 폐지를 반대하며)

아동노동을 금지하는 것도 순탄치 않았다.

지금 부모들은 맞벌이를 하더라도 자녀를 잘 키우기 어려운 형편이다. 아동 스스로 자기 밥벌이를 할 수 없게 하면 어려움이 더욱 커질 것이다. (스탠리 경, 1818년 아동노동시간 제한법에 반대하며)

의무교육조차 반대가 거셌다!

평생 글을 읽거나 쓸 일이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운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토지 소유자가 세금을 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밴시타트 영국 재무장관, 1807년)

지금은 상식으로 통하는 소득세조차 과거엔 비상 상황에나 매기는 세금이었다.

평시에는 국민들에게 소득세의 부담을 줘선 안 된다. 소득세 부과는 중요한 시기를 위해 유보돼야 한다.(헨리 애딩턴 영국 총리, 1802년 소득세를 폐지하며)

휴일을 늘리는 데 반대하는 것도 똑같았다.

의회가 법으로 노동자들에게 게으름을 강제한다면 모든 산업 분야에서 외국의 경쟁력을 높여주게 돼 감당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윌슨 하원의원, 1875년 은행 휴일에 반대하며)

개혁은 어렵다. 잃을 게 많은 이들은 마치 이런 개혁이 실시되면 당장이라도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처럼 다양한 논리를 동원해 여론을 조성한다. 물론 그 중에는 일리있는 부분도 있을 거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우려는 엄살 또는 기우에 불과했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 영국 정치인들의 발언은 Matthew Parris & Phil Mason, Mission Accomplished : Things Politicians wish they hadn't said, JR Books, 2008에서 인용했음.

Posted by 술이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