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야기2016. 5. 3. 00:35

<의료보험 절대로 들지 마라>(김종명, 2012). 도발적인 제목만큼 주장도 명쾌하다. 민간 의료보험은 가입하면 무조건 손해다! 보험료 구성을 살펴보면 이건 너무나도 명백하다.

 

보험료 = 순보험료 + 부가보험료 = (위험보험료 + 저축보험료) + (신계약비 + 유지비 + 수금비)

 

가입자가 낸 보험료에서 사업비(계약비, 유지비, 수금비)를 뺀 나머지만 보험금 지급에 쓰인다. 그런데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의 사업비 비중은 40%를 넘는다. 게다가 순보험료라고 다 가입자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보험사들은 손해율(위험보험료 중 보험금 지급 비율)을 80% 선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 보험? 깨알같은 약관 때문에 보험금 못 받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실손보험? 진짜로 병원 많이 갈 나이가 되면 갱신 때문에 보험료 폭탄을 맞게 된다! 만기 환급금? 몇푼 환급 받는 대신 보험료는 몇 배를 더 낸다! 그 돈으로 저축을 하는 게 수익률이 더 높다!

 

저자는 대안으로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한다. 건강보험은 기업과 국가도 보험료를 부담하기 때문에 상위 5%를 제외한 국민에게 무조건 이익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의료비 부담을 느끼는 건 보장률이 낮고 비급여 항목이 많기 때문이라는 거다. 보험료를 1만 원 정도만 인상하면 전국민 의료비의 90%를 보장할 수 있다. 다만 불합리한 보험료 부과 체계를 개선할 필요는 있다.

 

전체적으로는 동감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개인 차원에서 보면 난감하다. 가령 '민간 의료보험 들면 무조건 손해'라는 말은 '로또 사면 무조건 손해'라는 말이나 같다. 큰 병에 걸려 파산하게 될 확률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처럼 낮기 때문이다. 보험금이든 로또 당첨금이든 기대값은 마이너스라는 얘기다.

 

하지만 중병에 걸릴 위험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도 나에게 일어나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이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개인이 당장 할 수 있는 건 '건강보험 보장성 높이기 투쟁'같은 게 아니다. 결국 암보험이든 실손보험이든 가입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민간보험과 건강보험은 제로섬 관계라는 것. 그래서 덩치가 커진 민간보험은 어떻게든 건강보험의 영역을 차지하려 할 거고, 적어도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높아지는 걸 막으려 할 거다(의료비 부담이 없다면 누가 보험에 가입하겠나!). 그게 성공하면 의료는 이익을 추구하는 산업이 되는 것이고, 그 모델은 모두가 잘 아는대로 미국이다.

 

나의 의료비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가입한 민간 보험이 건강보험 확대를 막고, 그래서 의료비 위험이 더욱 커진다. 이 악순환을 어떻게 막을까? 보험사의 언론플레이에 속지 않는 똑똑한 기자, 보험사의 로비에 넘어가지 않는 바른 정치인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걸까?

Posted by 술이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