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20일에 썼던 글입니다.)
해당 글을 다 읽어볼 여유가 없는 분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옥시스님께서는 한미관계라든가 경제적 이권에 관한 고려가 결코 파병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것은 '역사의식과 철학의 빈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세계 평화는 단순히 무엇을 반대하는 네거티브 액션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해서 바꾸어야 한다. 이라크 전쟁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발견된다. '우리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도덕성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방관은 곧 직무유기이므로.
그리고 '참여'의 중요성과 의의에는 공감하면서도, 나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1. '선의지'의 가능성과 '구조'의 제약
옥시스님께서는 파병이냐 철수냐만을 놓고 따지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논쟁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행위자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냐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정 '선의지'를 가진 '평화재건'을 위한 파병이라면 정당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라크에서 '선의지'만으로 평화재건이 가능한가.
옥시스님께서는 이라크 전쟁의 원인을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테러리즘과 미국의 친이스라엘 세계안보전략 사이의 갈등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부터 의견이 갈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전제를 받아들이자면, 평화와 중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위 두 세력 모두로부터 중립적, 독자적인 성격의 파병이 되어야 한다. 이는 미국과 그 동맹국과의 협력 없는 독립적 작전 수행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럴 능력이 있는가?
한미동맹이 없었을 경우 한국은 결코 이라크에 파병하지 않았을 것이다. 파병 논란의 처음부터 끝까지 찬성 논리를 관철한 것은 한미동맹, 대 테러전 동맹이었다. 그것은 명백히 '미국의 친 이스라엘 세계안보전략'의 편을 들어준 것이었다. 파병의 성격 자체가 그럴진대 무슨 중재가 가능하단 말인가. 설령 우리 정부의 '선의지'를 믿는다고 해도, 그것이 '이슬람 원리주의자'에게도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대체, '적'의 '중재'를 누가 인정한단 말인가!
2. '선의지'의 표현 형태 : 자이툰 부대
어쨌든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에 갔다. 그럼 거기서 한 일은 무엇인가. 8월 2일자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지난 1년간 자이툰 부대의 주요 활동은 각종 장비와 물자 지원, 자이툰병원 및 기술교육센터, 문맹자 교실 등 운영, 상하수도 정비, 학교 개/보수, 도로 포장, 마을회관 신축 등이다. 다 좋은 일이다. 일이지만, '이슬람과 미국 사이의 중재'라는 원대한 목표와는 얼마나 거리가 있는가.
정부는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한다. 정말로 이라크의 치안 확보가 목표라면 희생자가 몇 명이 나오든 적극적으로 분쟁에 개입하고, 그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그저 대민 지원 정도가 목표라면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한다는 원대한 수사는 중단해야 한다. 지지자들 역시 단순히 정부의 '선의지'를 믿고 지지만을 표시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한국의 역할에 대한 의사를 표현해야 할 것이다.
3. 모든 파병은 평화를 위하는가
'국제평화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소말리아,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의 우리 국군처럼 생명을 무릅써야 한다.' - 동감한다. 그러나 역으로 '생명을 무릅쓰면 국제평화가 주어진다'고 한다면 결단코 아니라고 할 것이다. 아니, 동티모르와 이라크를 어떻게 비교한단 말인가. 독립국가 건설을 지원하기 위한 파병과, 독립국가에 대한 침략으로 시작된 파병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물론 이런 것은 옥시스님도 충분히 인정하시리라 믿고, 길게 늘어놓지 않겠다.
아무리 우리가 '선의지'를 갖고 파병을 한다고 해도, 그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세계 평화를 위한 참여는 '선의지'와 아울러 국내외 정치적 구조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단지 여기저기 분쟁에 개입하는 것만으로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
4. 네거티브 액션과 평화
단순히 무언가를 반대하는 것만으로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이 유효한 수단이 될 수는 있다. 진부한 예가 되겠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반전 여론이 가졌던 효과를 생각하면, 반전 캠페인은 그저 '미국을 조금 당황하게 할 뿐'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물론 이라크 전쟁의 전후 처리 문제는 중요한 일이다. 미국이 무작정 철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도 논란거리이다. 그러나 사태를 수습할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면, 굳이 그 분쟁에 개입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길 수 없다면 참여하지 말라!
곧 파병연장동의안이 국회에 상정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의지'만으로 미국의 용병으로부터 평화와 재건의 부대로 거듭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끝으로 여담이지만, 대인지뢰 금지협약이 세계평화에 있어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적으셨는데, 그 협약에 강력히 반대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런 우리 정부의 입장이 이번 정권 들어 바뀌었는지의 여부는 과문한 탓에 듣지 못하였지만, 평화를 향한 우리 정부의 '선의지'를 신뢰하기는 아직 어렵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 글은 옥시스님의 내가 이라크 파병을 찬성했던 이유: 파병과 평화에 대한 트랙백이다. 다른 파병 찬성론자들의 천박한 현실론이나 경제적 동기와 달리, 이 글은 매우 세련된 논리로 파병의 정당성 - 정확히는 정당할 수도 있는 '가능성' - 을 제안하고 있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충분히 있어서, 쉽게 그렇고 그런 찬성론 중의 하나로 치부할 수는 없는 글이다.
본래 트랙백을 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이 글이 어제 올블로그 알찬글에 선정되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런데도 답글이 하나도 없다는 데 더욱 놀랐다. 공들여 글을 쓴 저자의 정성에,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주눅이 든 것일까. 그러나 논지에 일부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넘어가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고 판단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글을 보내본다.해당 글을 다 읽어볼 여유가 없는 분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옥시스님께서는 한미관계라든가 경제적 이권에 관한 고려가 결코 파병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것은 '역사의식과 철학의 빈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세계 평화는 단순히 무엇을 반대하는 네거티브 액션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해서 바꾸어야 한다. 이라크 전쟁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발견된다. '우리는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도덕성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방관은 곧 직무유기이므로.
그리고 '참여'의 중요성과 의의에는 공감하면서도, 나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1. '선의지'의 가능성과 '구조'의 제약
옥시스님께서는 파병이냐 철수냐만을 놓고 따지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논쟁이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행위자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냐이다. 이런 맥락에서 진정 '선의지'를 가진 '평화재건'을 위한 파병이라면 정당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라크에서 '선의지'만으로 평화재건이 가능한가.
옥시스님께서는 이라크 전쟁의 원인을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테러리즘과 미국의 친이스라엘 세계안보전략 사이의 갈등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부터 의견이 갈리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전제를 받아들이자면, 평화와 중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위 두 세력 모두로부터 중립적, 독자적인 성격의 파병이 되어야 한다. 이는 미국과 그 동맹국과의 협력 없는 독립적 작전 수행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럴 능력이 있는가?
한미동맹이 없었을 경우 한국은 결코 이라크에 파병하지 않았을 것이다. 파병 논란의 처음부터 끝까지 찬성 논리를 관철한 것은 한미동맹, 대 테러전 동맹이었다. 그것은 명백히 '미국의 친 이스라엘 세계안보전략'의 편을 들어준 것이었다. 파병의 성격 자체가 그럴진대 무슨 중재가 가능하단 말인가. 설령 우리 정부의 '선의지'를 믿는다고 해도, 그것이 '이슬람 원리주의자'에게도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대체, '적'의 '중재'를 누가 인정한단 말인가!
2. '선의지'의 표현 형태 : 자이툰 부대
어쨌든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에 갔다. 그럼 거기서 한 일은 무엇인가. 8월 2일자 연합뉴스 기사를 보면 지난 1년간 자이툰 부대의 주요 활동은 각종 장비와 물자 지원, 자이툰병원 및 기술교육센터, 문맹자 교실 등 운영, 상하수도 정비, 학교 개/보수, 도로 포장, 마을회관 신축 등이다. 다 좋은 일이다. 일이지만, '이슬람과 미국 사이의 중재'라는 원대한 목표와는 얼마나 거리가 있는가.
정부는 입장을 확실히 해야 한다. 정말로 이라크의 치안 확보가 목표라면 희생자가 몇 명이 나오든 적극적으로 분쟁에 개입하고, 그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그저 대민 지원 정도가 목표라면 세계평화에 기여하기 위한다는 원대한 수사는 중단해야 한다. 지지자들 역시 단순히 정부의 '선의지'를 믿고 지지만을 표시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한국의 역할에 대한 의사를 표현해야 할 것이다.
3. 모든 파병은 평화를 위하는가
'국제평화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소말리아,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의 우리 국군처럼 생명을 무릅써야 한다.' - 동감한다. 그러나 역으로 '생명을 무릅쓰면 국제평화가 주어진다'고 한다면 결단코 아니라고 할 것이다. 아니, 동티모르와 이라크를 어떻게 비교한단 말인가. 독립국가 건설을 지원하기 위한 파병과, 독립국가에 대한 침략으로 시작된 파병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물론 이런 것은 옥시스님도 충분히 인정하시리라 믿고, 길게 늘어놓지 않겠다.
아무리 우리가 '선의지'를 갖고 파병을 한다고 해도, 그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세계 평화를 위한 참여는 '선의지'와 아울러 국내외 정치적 구조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단지 여기저기 분쟁에 개입하는 것만으로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
4. 네거티브 액션과 평화
단순히 무언가를 반대하는 것만으로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이 유효한 수단이 될 수는 있다. 진부한 예가 되겠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반전 여론이 가졌던 효과를 생각하면, 반전 캠페인은 그저 '미국을 조금 당황하게 할 뿐'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물론 이라크 전쟁의 전후 처리 문제는 중요한 일이다. 미국이 무작정 철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도 논란거리이다. 그러나 사태를 수습할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면, 굳이 그 분쟁에 개입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길 수 없다면 참여하지 말라!
곧 파병연장동의안이 국회에 상정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선의지'만으로 미국의 용병으로부터 평화와 재건의 부대로 거듭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끝으로 여담이지만, 대인지뢰 금지협약이 세계평화에 있어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라고 적으셨는데, 그 협약에 강력히 반대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런 우리 정부의 입장이 이번 정권 들어 바뀌었는지의 여부는 과문한 탓에 듣지 못하였지만, 평화를 향한 우리 정부의 '선의지'를 신뢰하기는 아직 어렵다는 증거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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