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야기2011. 8. 30. 21:04
(2005년 9월 4일에 썼던 글입니다.)


1. 2002년에 제작된 영화가 한국에서는 이제서야 상영되는 건, 시장성이 없어서일까, 다른 정치적인 이유 때문일까.

2. 약 150명 규모의 객석은 꽉 들어찼다. 나중에 보니 외국인도 꽤 있었다. 어떻게 알고 왔을까. 분명 북한에 대한 호기심에 자극받았을 터. 내 발길을 극장으로 끈 것 역시 호기심이었으니,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북한을 잘 모르긴 마찬가지인 듯하다.

3. 스크린에 비친 북한은 놀라웠다. 저 나라가 어딜 봐서 3백만 명이 아사했다는 나라인가. 물론 내가 북한 식량난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 쪽에선 사람들이 살기 위해 죽을 각오로 국경을 넘는데, 다른 쪽에선 기아나 가난의 징후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이 모순은 무엇인가. 두 곳은 과연 같은 나라인가. 그런 나라가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나라인가.

4. 영화는 잘 만들어졌다. 번역도 매끈하게 됐고, 그 덕에 더 재밌어졌다. 관객들의 웃음도 적당히 이어졌다. 그러나 남쪽에서 안 쓰는 북한식 단어가 들릴 때, 선수들이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왜 웃는 것일까.

5. 선수들은 진심으로 '수령님'을 사모하고 있었다. 북한의 김일성 숭배가 단순한 강제만은 아니라고 이미 알고 있었으나, 출국 당시 '수령님'과의 만남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선수들을 화면으로 보게 되자 마음이 아득해졌다. 세상에, 김일성은 죽은지 10년이 지났단 말이다! 축구 경기에 대한 '수령님'의 지도와 교시 - 역시 그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였다 - 를 아직까지 자랑스럽게 되뇌이는 선수를 보면서는 나 역시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지는 영화에서 '수령님'의 교시를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선수들은 경기를 하면서도 공화국과 수령님을 위해 뛰었다 말하고, 승리하고 나서도 '수령님'이 명한 과업을 달성하여 기쁘다고 말한다. 감독은 경기 장면 중간 중간에 북한 곳곳에 설치된 선전 조형물들을 비춰줌으로써 그들의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국가적 대사임을 암시한다. 아, 먹든지 마시든지 무얼 하든지 '수령님'의 영광을 위해! 숨이 막힌다..2005년 지금은 어떠할까.

6. 어쨌든 포르투갈과의 8강전은 4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아쉬웠다. 명승부였는데..라고 말하면 고무, 찬양 혐의로 수배되려나? --a

7. 화면에 비친 북한을, 북한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만 놓고 본다면 북한 역시 우리와 큰 차이는 없어보닌다. 결국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 게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얼마나 또 달라져 버렸는가. 한 쪽은 심각하게 말하고 있는데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들과, 삶과 존재의 모든 이유가 '수령님'과 '장군님'인 사람들. 이 사람들이, 정말로 함께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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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술이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