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3월 14일에 올렸다가 날아간 글로, fidesmea님(블로그 바로가기)의 도움을 받아 RSS리더에 남아있던 것으로 복구한 것입니다. 충격에 허우적대던 저를 구원해주신 fidesmea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 이 글은 『제국주의 : 신화와 현실』(박지향, 서울대학교출판부) 중 제5장 「제국주의와 경제 : 수탈인가 근대화인가」을 요약,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서양 제국주의를 영국을 중심으로 분석한 것이므로, 우리의 경험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국주의가 단지 한일간에만 있었던 현상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것이었던만큼,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지배를 바라볼 수 있는 유용한 관점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소설책 읽듯 술술 읽히는 책은 물론 아닙니다만 각종 철학책보다는 훨씬 쉬우니, 이 주제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저자는 현재 영국 제국주의와 일본 제국주의의 비교 연구를 수행중이라 합니다. 조만간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식민지 근대화를 말한다
제국의 식민지 지배는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 결과이자 동시에 원동력이었음은 오늘날 잘 알려진 상식이다. 제국에게 식민지는 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중요한 원료 공급지였으며, 또한 생산된 상품을 손쉽게 내다 팔 수 있는 시장의 역할을 하였다고 이해된다. 과연 실제로 그랬는가? 최근의 실증적 연구는 이와는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1. 제국에서 본 식민지
원료 공급지
식민지는 과연 제국의 산업을 지탱하는 원료 공급지였는가? 확실히 오늘날 선진국은 각종 자원의 절반 이상을 제3세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2차대전 이전의 상황은 달랐다.
우선 가장 중요한 동력자원이었던 석탄을 보자. 가장 큰 제국이었던 영국은 오히려 석탄 수출국이었다. 영국의 석탄 수출량은 1837년에 100만톤, 1882년에 2천만톤, 1913년에는 7천 8백만 톤에 이르렀다. 독일 역시 석탄 수출국이었다. 한마디로 당시 유럽에서는 석탄이 남아돌았다.
석유는 어떨까? 1913년 현재 유럽은 석유 소비량의 약 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것 자체도 큰 비율은 아닐뿐더러, 당시 석유는 그다지 중요한 자원이 아니어서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5% 미만이었다. 석유가 중요해진 것은 2차대전 이후이다.
철, 구리, 주석, 보크사이트 등의 각종 금속도 마찬가지이다. 1차대전 이전까지 유럽은 금속 자원의 98%를 유럽 내에서 충당했다. 자급자족이 가능했던 것이다.
외국에서 원료를 수입해오는 경우에도, 그것은 주로 오스트레일리아나 북아메리카 자치령에서 수입되었지,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식민지로부터가 아니었다. 최소한 2차대전 이전까지, 원료 공급지로서 식민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상품 시장
그렇다면 생산된 상품을 처리하는 시장으로서 식민지는 어떤 위치를 갖고 있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식민지는 인구가 적고 가난하여 좋은 시장이 될 수 없었다. 실제로도 1800~1938년간 유럽의 전체 수출량중 식민지로 수출된 상품의 비율은 9%에 불과했다. 당시 수출이 국민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감안하면 식민지 수출의 기여도는 1.3~1.7% 정도가 될 뿐이다.
물론 영국은 예외이다. 영국은 자국산 면제품을 인도에 대량 수출하였다. 그러나 상품 판매를 위해서 반드시 식민지에 대한 정치적 통제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은 자국 식민지에 판매한 상품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인도에 팔았다.
자본 투자처
잉여 자본의 투자처로서 식민지의 역할이 강조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제국이 행한 해외 투자의 대부분은 다른 유럽 국가나 독립국, 자치령 등으로 흘러갔다. 영국 투자의 절반 이상은 해외 독립국과 자치령에 투여되었으며, 프랑스 역시 식민지에 대한 투자액은 전체의 10% 미만이다. 오히려 일부 제국은 스스로 채무국이기도 하였다. 덧붙여서 이렇다할 식민지가 없었던 미국, 스웨덴, 독일 등의 경제성장이 다른 제국에 비해 오히려 빨랐음도 지적할 수 있다.
식민지가 만들어낸 기술 개발 효과도 논쟁의 여지가 많다. 오히려 식민지 시장에 대한 손쉬운 접근을 가능케 함으로써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영국 면방직 공업이 좋은 예이다. 인도 시장이 존재함으로써 기술 개발이 정체되었던 것이다.
결국 제국은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식민지를 필요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식민지를 위해서도 반가운 소식이리라 생각한다.
2. 식민지에서 본 제국
제국에게 식민지가 경제적으로 큰 중요성이 없었다고 해서, 식민지 수탈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관점을 바꾸어 보면 그려지는 그림은 상당히 달라진다.
식민지에게 제국은 최대의 무역 거래 상대였다. 그리고 제국으로 수출되는 상품의 90%가 1차 산품이었다. 여기서 '제국은 식민지의 원료를 수탈하여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신화가 탄생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보다 중요한 현상은 식민 지배로 인해 나타난 탈산업화 및 산업구조의 왜곡이다. 제국의 상품이 싼 값으로 유입되면서 전통 산업은 해체되었다. 또한 제국은 식민지의 산업이 본국과 경쟁할 수 없도록 엄격히 규제하였기 때문에 식민지에서의 산업 발달은 제국에 종속된 기형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제국은 가능하면 식민지 경영의 부담을 식민지 주민들에게 떠넘기려고 하였음에도 제국이 수행하는 전쟁에 식민지 주민들을 다수 동원하였으므로, 식민지는 공짜로 쓰는 병력 자원의 역할도 하였다. 식민지를 통치하는 본국 관리들의 임금도 식민지에서 충당되었으므로 이런 형태로 수탈해 가는 부도 상당한 양이어서, 인도의 경우 식민지 재정지출의 20% 이상을 차지하였다.
다만 제국의 지배기간에 식민지에서 도로, 항만, 상하수도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이 설치, 정비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식민지에 거주하는 제국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설치된 것이므로 그것을 제국의 시혜라든가 선의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식민지가 이들 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다. 식민지가 독립국으로 남아있었을 경우 자원과 기술의 부족으로 인해 같은 기간 내에 이같은 발전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인정된다.
3. 결론
제국들이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 있어서 식민지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식민지가 없었더라도 제국은 비슷한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식민 지배의 결과 산업화가 가능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산업화를 이룩했기에 식민 지배가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제국은 왜 식민 지배를 추구했는가? 그들의 말대로 야만인들에게 문명의 빛을 전해주기 위해 부담을 떠맡은 것인가?
물론 그럴리는 없다. 우선 '사회 전체적 이익'과 '일부 계층의 이익'을 구분해야 한다. 제국 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식민지가 경제적으로 큰 이익이 없었다 하더라도, 식민 지배를 통해 이익을 얻는 계층이나 산업 부문은 분명히 존재했다. 식민 지배를 추동한 세력은 바로 이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식민지가 이익이 되는가 여부와는 상관 없이, 당시 지도층들은 식민지가 이익이 된다고 인식했다. 정책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보다는 사실인식인 것이다.
덧붙여서 식민 지배를 추구하는 데 경제적 동기만이 유일한 이유인 것은 아니다. 식민지를 확장하는 데는 정치적, 전략적인 고려도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아울러 '문명을 전파'한다는 그들의 선전도 단순히 미사여구로만 볼 수는 없다. 그들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 방식이 철저하게 서양우월주의적이었던 것이 문제이지.
그러나 거듭 말하듯, 식민지의 관점에서 볼 때는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또한 경제적 측면 외에도, 제국의 지배에서 강제된 정치적, 문화적, 민족적 차별, 그리고 독립 운동을 위해 소모된 인적, 물적 자원(독립운동이 소모적인 일이라는 뜻이 아님)을 고려해 볼때, 제국이 식민지에 미친 영향은 결코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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