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야기2011. 8. 30. 21:01
(2005년 8월 12일에 썼던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름의 인연이 있어서, 해마다 현충일 즈음이 되면 국립묘지를 찾아간다. 끝없이 늘어선 수십만 개의 비석을 보면서, 그리고 그들을 찾는 비석 수만큼의 인파를 보면서, 전쟁이란 얼마나 많은 생명을 앗아갔는가 전율하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별의 고통을 주었는가 슬퍼하면서도, 기념관의 전시 내용이나 길가에 걸린 현수막을 보면서는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건 한국전쟁을 기념하는 방식의 문제이다.

국립묘지를 민족의 성지로 추앙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전쟁이란 ‘북한 괴뢰도당의 침략에 맞서 자유 대한을 수호한 정의의 전쟁’이다. 우리는 피해자였고, 따라서 전쟁은 정당했으며, 그 전쟁에서 숨져간 사람들은 의인, 곧 '호국영령'이다.

영원히 대한민국이 ‘남한’으로 남아있는 한 이러한 역사인식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통일 한국을 가정할 때 이러한 인식에서는 곤란한 문제가 발생한다. 한국전쟁에 인민군의 편에서 참전하여 죽어간 사람들, 즉 ‘침략자’들을 어떻게 추모할 것인가? 국군 전사자들을 ‘호국영령’으로서 추모하면서, 이들에게 총을 겨눈 이들을 똑같은 방식으로 추모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버려둔다면 북한 주민들을 통일한국의 구성원에서 제외하는 격이 되어버린다.

북한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한국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정의하는 한, 그 해방의 전쟁에 저항한 국군과 같은 ‘반동’들을 추모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일은 간단한 게 아니다. 통일이 어느 한쪽에 의한 흡수통일이 되지 않는 이상, 한국전쟁의 해석에 관한 역사 논쟁은 어렵고도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이것은 흡사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참배 논쟁과도 닮아 보인다. 이 논쟁도 결국은 ‘전쟁을 어떻게 해석할까’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전쟁은 부도덕했는가, 그렇다면 그 전쟁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무의미한가. 물론 신사참배를 지지하는 사람 중에는 군국주의 자체를 미화하는 사람도 많지만, 전사자에 대한 추모라는 입장에서 지지를 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북한 대표단이 오는 15일에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한다고 한다. 정말로 반갑고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괴뢰 도당의 침략에 맞선 호국 영령의 성지’로 꾸며진 그 곳에서 북한 대표단은 무엇을 느낄까. 혹시나 ‘성지’가 더럽혀진다며 참배를 막을 열혈 애국지사들이 운집하는 것은 아닐까. 사자(死者)에 대한 추모의 마음으로 참배한 대표단은, 기념관의 전시물에 위화감만 느끼고 나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만일 남한 대표단이 북한의 국립묘지를 참배한다고 하면, 남한의 보수 단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역사란 단순한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며, 그 기억은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재구성된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만큼이나마 이룩한 민주화와 산업화에 감사하면서도, 그래서 북한 체제를 결코 부러워하지 않으면서도, 그러나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이 걸어온 역사에 대해서는 ‘꼭 그래야 했는가’하는 의문을 품고 있는 복잡한 입장에 서있는 나에게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역시 복잡한 문제이고, 그 전쟁을 기념하는 국립묘지 역시 애증의 공간이다.
 
속 편하게 한국전쟁은 냉전 체제에서 미소 양국의 대리전을 수행한 것 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남북한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면 편리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 우리 민족은 진짜 ‘괴뢰(傀儡, 꼭두각시)’가 되어버린다. 통일시대의 한국전쟁 해석은 어떠해야 하며, 그 기념과 추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일간에 벌어지는 것과 같은 역사 논쟁이 남북한 사이에서도 벌어지는 일만큼은 막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술이부작